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 장비 기업 ASML이 한국을 아시아의 핵심 거점으로 택하고 경기도 화성에 대규모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를 준공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류가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낸드플래시 시장까지 확산하는 상황에서 ASML의 협력 강화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기술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열린 ASML의 화성캠퍼스 준공식에는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위 임원, 강감찬 산업통상부 무역투자실장 등이 참석했다.
ASML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반도체 초미세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업체다. EUV 노광 장비는 웨이퍼에 초미세 회로 패턴을 그리는 장비다. 해당 장비를 독점 생산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에 공급해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불린다.
이날 준공된 화성캠퍼스에는 심자외선(DUV)·EUV 노광장비 등 첨단장비 부품 재제조센터와 첨단 기술 전수를 위한 트레이닝 센터 등이 들어섰다. ASML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과의 공정 협력 및 기술 교류를 강화하고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과의 협력 생태계 구축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푸케 CEO는 전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만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과도 회동해 양사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ASML의 이번 투자는 최근 가속 중인 메모리 슈퍼사이클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D램과 HBM 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으며 최근에는 낸드 수요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AI 인프라 수요 폭증으로 고용량 저장장치인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SSD는 낸드 칩을 여러 개 결합해 제작한다.
글로벌 낸드 가격은 10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 범용 제품(128Gb MLC) 고정거래가격은 지난 1월 2.18달러에서 지난달 4.35달러로 두 배가량 올랐다. D램 범용 제품(DDR4 8Gb) 역시 지난달 7달러를 돌파해 6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 시장 축소론은 시기상조”라며 “D램과 낸드 캐파(생산능력) 증설이 제한적인 만큼 앞으로 2년 간은 수요 대비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져 반도체 초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제조의 필수 요소인 장비 시장도 동반 호황이 예상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7.4% 증가한 1255억 달러(약 184조원)로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 예측했다. 내년에는 이보다 10%가량 늘어난 1381억 달러(약 203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