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2일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를 ‘신중히 판단하라’고 의견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결국 판단의 주체는 검찰”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인 항소 포기 판단은 검찰이 내린 것이니 책임도 검찰이 져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이날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찰청 차장)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법무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항소 포기 후폭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정에 관여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정 장관은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항소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한 것은 결국 판단의 주체는 검찰”이라며 “검찰에 (항소) 판단·허가 권한이 있으니까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의견을 냈을 뿐 지시나 지침을 준 게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공을 검찰로 넘긴 것이다.
지난 7일 항소 제기 여부와 관련해 노 대행과 통화한 이진수 법무부 차관도 수사지휘권 행사 논란에는 선을 그었다. 이 차관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결소위에서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노 대행에게 전화한 사실은 맞는다”면서도 “이것이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며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답했다. 이 차관은 노 대행에게 모두 항소 포기 내용인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하면서 “장관의 의견을 전하며 검찰에서 검토 후 결과를 알려 달라고 한 차례 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장관과 이 차관이 결정의 주체로 지목한 검찰 수뇌부에서는 법무부의 압력을 시사하는 발언이 연일 흘러나왔다. 노 대행은 지난 10일 대검 참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차관과의 통화를 거론하며 용산(대통령실), 법무부와의 관계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항소 포기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점을 토로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 누구도 현 상황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검장 출신 한 변호사는 “법무부는 사실상의 수사지휘를 하고도 정치적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있고, 법무부의 힘에 굴복한 노 대행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8일 사의를 밝힌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책임 회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 지검장은 지난 7일 노 대행의 항소 불허 지휘를 수용해 막판 입장을 번복했다. 정 지검장은 이후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은 다르다”는 입장을 냈다. 이를 두고 한 부장검사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려놓고 내 생각은 다르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구자창 박재현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