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혼자가 아니야” 창작시 낭송하고 노래… 빛난 보육원 아이들

입력 2025-11-12 18:53
지난 6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제 1회 야나 아동 재능경연대회에서 레전드상을 받은 명륜보육원 버섯둥이중창단(가운데)이 심사위원 차인표, 야나 이수정 대표, 성악가 임선혜, 가수 가희(왼쪽부터)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야나 제공

“누군가는 나를 지나치고/ 누군가는 나를 꺾어버리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영원히 서 있었다/ 비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되어/ 내가 살아 숨 쉬게 도와줬다/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이겨내는/ 내 가지들로 나는 숲을 완성해 냈다/ 그 숲은 이제 누군가의 그늘이 되려 한다.”

무대에 오른 고등학교 2학년 정하연(가명)양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자작시 ‘열여덟 해’를 낭송했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한 그루 나무가 숲으로 자라나는 영상이 펼쳐졌다. 낭송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경연대회를 준비하면서 후회만 백 번은 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시를 낭송하는 게 너무 두렵고 떨렸거든요. 그런데요 여러분, 제가 이렇게 도전했어요.” 조심스럽게 이어간 그의 말이 끝나자, 힘찬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지난 6일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을 돕기 위해 모인 ㈔야나(YANA·You Are Not Alone) 주최로 서울 중구 영락교회(김운성 목사)에서 열린 제 1회 야나 아동 재능경연대회 현장이다.

어른들의 응원, 아이들을 세우다
이번 대회의 주제 ‘보여줘 너만의 빛을’이 적힌 플래카드가 관객석에 설치된 모습. 야나 제공

‘보여줘, 너만의 빛을’을 주제로 처음 열린 이번 대회는 예선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전국 28개 팀이 지원해 오디션 영상 예선을 거쳤다. 이날 본선 무대에 오른 건 15개 팀이다. 1939년 한경직 목사가 설립한 영락보린원을 운영하는 영락교회(김운성 목사)가 대회 취지에 공감해 1500석 규모의 무대를 내어주었다.

야나 홍보대사인 신애라씨는 이날 현장에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연말 후원행사에서만 잠깐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 늘 아쉬웠다”며 “여러분들이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는 경쟁이 아닌 축제의 무대이니, 떨림마저 즐기길 바란다. 오늘 여러분의 재능을 응원하러 온 많은 사람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경연대회 사회자로 개그맨 김기리씨가 등장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공연장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작가이자 배우인 차인표, 소프라노 성악가 인선혜, 가수 가희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아이들의 빛나는 무대를 응원했다.

야나 아동 재능경연대회 무대에서 파주보육원 김소망(가명)군이 통기타로 ‘마에스트로’를 연주하고 있다. 야나 제공

‘감성’ ‘목소리’ ‘나의 표현’ ‘에너지’ 4개 스테이지로 진행된 이번 재능경연대회에서 아이들은 노래와 춤 연주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각자의 끼와 재능을 펼쳤다. 파주보육원의 김소망(16·가명)군은 통기타로 ‘마에스트로’를 연주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남색 반바지와 파란 셔츠, 넥타이를 맞춰 입은 명륜보육원 초등생 ‘버섯둥이중창단’은 고개를 까딱이며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무대 위에 선 예비자립준비청년들은 각자의 재능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초등학교 3학년 김현상(가명)군은 따뜻한 나뭇잎 속에 쌓여 있는 고슴도치 그림을 통해 ‘작은 존재라도 사랑과 온기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배우를 꿈꾸는 한 여고생은 연극의 한 장면을 힘 있게 연기하며 객석의 친구들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여기까지 잘 버텨줘서 고마워. 네가 대견하고 멋있어. 살다 보면 힘든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오지. 그땐 포기해도 돼. 포기라는 건 힘든 순간에 찾아오는 멈춤 휴식이니까. 하지만 희망은 놓치지 않기로 해.”

차인표씨는 “‘나무잎 이불이 좋은 고슴도치’ 그림을 보며 현상군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며 “섬세한 감성과 표현력이 돋보여 훌륭한 화가가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배우의 꿈을 안고 무대에 선 소녀에게는 “성량과 발음이 뛰어나다. 무대를 통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격려했다.

“밝은 조명과 박수갈채 잊지 않길”

시상식을 위해 무대에 오른 크리스천 유튜버이자 ㈜에이치유지 대표인 황태환(34)씨는 “오늘 여러분의 노력과 선생님들의 헌신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며 “오늘의 박수를 기억하길 바라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옆에서 어른들이 계속 박수치며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시상은 순위를 매기는 대신 아이들 각자의 노력과 열정의 의미를 격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타를 연주한 김소망군은 ‘드림업상’을, 코비그룹과 소망그룹홈은 ‘슈퍼스타상’, 핸드벨 연주를 한 파인트리홈은 ‘히어로상’, 명륜보육원 버섯둥이중창단은 ‘레전드상’을 받았다. 야나는 수상자들에게 아이패드와 상금을 전달했다.

버섯돌이중창단의 김진수(8·익명)군은 “경연대회를 위해 여름부터 열심히 연습했는데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중창단을 지도한 이은영(55) 사회복지사는 “‘버섯돌이’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 이름으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경연에 참여했다”며 “처음엔 음정도 맞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힘들던 아이들이 연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수정 야나 대표는 “오늘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오래 남고, 내년엔 더 많은 아이들이 빛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