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 안팎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망했어야 할 한계 기업이 제때 퇴출되지 않는 경직된 시장 구조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12일 내놓은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 위기,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성장률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둔화했다.
이런 현상은 한계 기업 퇴출이 지연돼 민간 투자가 부진해진 탓에 나타났다. 한은이 기업 12만여곳의 미시 데이터를 바탕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과 투기 등급 회사채의 부도 확률(5%)을 넘어서는 기업을 추정해 퇴출 고위험 기업을 식별한 결과 2014~2019년 이런 기업 비중은 전체의 4%였다. 그러나 실제로 퇴출된 기업 비중은 2%로 절반에 불과했다. 2022~2024년에는 고위험 기업 비중이 3.8%였는데 퇴출 기업 비중은 0.4%로 비효율성이 더 커졌다.
한은은 2014~2019년 고위험 기업이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다면 국내 투자는 3.3%, 국내총생산(GDP)은 0.5%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22~2024년의 경우 국내 투자는 2.8%, GDP는 0.4% 증가했을 것으로 봤다. 2024년 명목GDP가 2557조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한계 기업의 잔존으로 10조원 넘는 손해를 본 것이다.
고위험 기업을 떠받친 것은 유동성 방패다. 이들은 수익성과 부채 구조가 퇴출당한 기업보다 나빴지만 유동성 지표가 양호한 덕분에 살아 남은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 당국의 대출 만기 연장이나 지급 보증 등 각종 지원책에 힘입은 결과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돌입하게 한 민간 투자 부진은 기업의 영업이익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정책 처방의 초점이 수익성 회복이 아니라 유동성 지원에 맞춰져 있었다는 평가다.
고위험 기업이 원활히 퇴출당하는 ‘정화 메커니즘’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게 한은의 주장이다.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쉽게 대체돼 자본과 인력이 효율적으로 재배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웅 한은 조사국 차장은 “금융 지원은 혁신적인 초기 기업 등에 선별적으로 해 개별 기업보다 산업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둬야 한다”면서 “규제를 완화해 신산업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수요를 창출, 경제의 미래 동력을 계속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