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 역사에서 광화문광장으로 올라오면 멀리 경복궁과 북악산 풍광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 이내 뺨을 세게 맞는 기분이 든다. 리모델링을 마친 한 통신사 건물의 괴물처럼 거대한 전광판에서 나오는 시각적 이미지가 뺨 때리듯 눈을 후려쳐서다. 나오는 내용은 온통 상업 광고다. 눈이 시려 차마 그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못할 만큼 거대한 광고판이 무려 두 개나 설치돼 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다니엘 뷔렌의 예술작품으로 휘감았던 한 언론사의 곡면 기둥 건물 전체도 상업용 전광판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 같은 회사 건물 옥상에 전광판이 있는데도 새로 만들었다. 길 건너 다른 언론사 빌딩도 한쪽 벽면 전체가 전광판으로 바뀐 데 이은 것이다.
이들 신생 전광판은 기존 광화문광장 주변 빌딩의 전광판과는 압도적인 크기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알고 봤더니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종로구청이 신청한 광화문 일대, 중구청이 신청한 신세계백화점 일대를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새로 지정했고, 참여한 건물주들이 올 들어 순차적으로 시행에 들어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옥외광고물법은 현수막, 전광판 등 옥외광고에 일정한 요건을 갖추도록 규제를 한다. 하지만 이들 자유표시구역에서는 광고물의 모양, 크기, 색깔, 설치 방법 등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풀었다.
그러다보니 전광판의 크기가 상식을 넘는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각적 충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기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세종문화회관 등 공공건물 혹은 민간건물에 설치된 전광판과 비교해보면 안다. 이들 전광판은 크기가 작기도 하지만 내용에서도 공공성을 지향한다. 지금의 광화문 일대의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전광판은 행안부가 2016년 1기로 지정했던 강남구 코엑스 일대 전광판과 비교해도 크기와 내용면에서 너무 나갔다.
행안부는 미국 뉴욕의 타임광장처럼 대형 최첨단 디지털 광고 특구로 거듭나게 해 관련 산업도 살리고 외국 관광객도 유치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각적 충격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광판에서 쏟아지는 상업적 이미지는 시각 공해다. 북한산과 궁궐을 보며 정화됐던 안구가 갑자기 광고로 오염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해도 과잉은 문제인데 말이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빌딩은 거대한 벽면을 캔버스 삼아 영국 현대미술 작가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선보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영상을 쏘지 않는다. 절제되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라 시각 공해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 때문인지 서울스퀘어는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사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역시나 종로구에서 35년째 심금을 울리는 시와 문장을 담은 ‘광화문 글판’으로 유명한 교보생명도 이 상업용 전광판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과도한 상업용 전광판은 주변 경관 파괴를 넘어 개인의 시각 피로감을 높이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나아가 공중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광고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전가한다는 점에서 공해와 마찬가지로 ‘외부 불경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시각 오염세’라도 내라고 주장하고 싶은 심정인데, 그걸 정부가 나서서 장려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특정 집단에 가는 혜택 때문에 대다수 시민에게 신체적, 정서적 피해를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대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강요당하듯 뭔가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부동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법적 권리로서 조망권의 확장된 개념으로 시각권을 주장하고 싶다. 행안부는 정책적 재고가 필요하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