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하는 도시 외에 관계를 맺고 사는 지역이 있다면 어떨까. 서울에 살면서 충주라는 지방 소도시와 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방식 말이다. 관계지역은 어릴 적 자란 고향일 수 있고, 가까운 친구가 사는 곳일 수 있고, 여행하다가 매력을 느낀 동네일 수도 있다.
제주도를 좋아해 틈만 나면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강원도 고성의 바다에 매료돼 이주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지역에서 ‘한 달 살기’를 하거나 지방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서울과 오가며 ‘이중거점’ 생활을 하는 트렌드도 있다. 일 외에 취미를 가지고 사는 것처럼 거주지 외에 또 하나의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라이프스타일도 가능하다. 그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찾아가고,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그러면서 그곳에 좋아하는 카페나 책방, 숙소가 생기고 아는 사람도 늘어난다.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삶의 어느 순간 거기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취미가 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지역과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관계인구’라고 부른다. 지역재생을 다루는 일본 잡지 ‘소토코토’ 편집장인 사시데 가즈마사는 근래 국내 번역된 ‘온 더 로드’라는 저서에서 관계인구를 ‘관광 이상, 이주 미만’의 인구로 설명한다. 그 지역과 연결된 사람,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 1718곳 중 1000곳 이상이 관련 정책을 펼칠 정도로 관계인구라는 말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학업이나 직장 등을 이유로 그 지역을 오가거나 체류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생활인구’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생활인구라는 말이 지역과의 물리적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라면 관계인구는 심리적 관계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보다 넓고 느슨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인구나 관계인구는 지방의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말이다. 정주인구의 감소에 맞서 생활인구나 관계인구를 끌어들여 이들과 함께 지역의 활력을 유지해 나가고, 장기적으로 이들의 이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 모두 거대한 인구 집단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기를 맞이해 이들의 지역 이주를 유도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의 소멸 위기에 대응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마강래 중앙대 교수 등이 꽤 오래전부터 이런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상황에서 한 국가의 생산력 중심지인 수도권이 노인들로 채워지는 것은 어쩌면 지방 소멸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될지 모른다.
지방은 은퇴와 노후를 고민하는 고령층에게, 다른 일과 다른 삶을 모색하는 청년층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주변 선배들 중에 은퇴를 앞두고 지방 이주를 고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 세대의 전원생활, 지방생활에 대한 열망은 여러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지방 이주를 실행하는 사례는 드물다. 지방으로 간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조금 가볍게 시작해보면 어떨까. 관계인구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취미 활동이나 문화생활을 하듯 어느 한 지역과 천천히 조금씩 관계를 쌓아가 보는 것이다. 프로야구팀의 팬이 되는 것처럼, 어떤 가수를 덕질하는 것처럼, 경주의 관계인구, 곡성의 관계인구가 될 수 있다.
지역과 관계 맺기가 반드시 이주로 이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에 관심을 나눠주는 것 자체만으로 자신의 세계와 감각을 확장시키고 그 지역을 응원하는 일이 된다. 그렇게 거주하지 않더라도 관심이나 관계로 ‘연결된 주민들’이 되어 그 지역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김남중 편집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