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서울, 보전과 개발의 경계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25-11-13 00:34

종묘 앞 세운상가 개발 논쟁
서울 도심정책 방향 가를 기점

역사문화유산 주변 현대 건물
경관 해친다는 관념 벗어나야

녹지·문화 공존 공간 만들 때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난다

최근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구역의 높이 문제가 아니다. 종묘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둘러싼 개발 논쟁은 서울 사대문 안 모든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도시 발전 방향을 함께 묻는 사건이다. 서울의 도심은 이제 역사 중심의 경관 관리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역사와 현대, 보전과 개발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서울 도심 정책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

지난여름 몇 번의 주말을 내 사대문 안 고궁들과 서울성곽길을 걸었다. 돌아보면 몇 십 년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과 덕수궁을 찾은 것이 손에 꼽힐 정도다. 돈의문터에서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 6코스 중 인왕산 구간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과 남산 서울타워의 실루엣은 빌딩 숲과 자연 지형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선사했다. 며칠 뒤에는 청계천에서 시작해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와 창경궁을 관통하고, 낙산공원과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 2코스를 택했다. 고즈넉한 종묘와 연결 통로로 이어진 창경궁의 녹음은 그 자체로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대학로를 지나 낙산공원까지 오르니 케데헌의 서울성곽 명소가 펼쳐졌고, 흥인지문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미디어를 통해 익숙한 카페와 골목,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이어졌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불빛이 켜질 무렵, 청계천 주변의 야경과 함께 도심 트레킹이 마무리됐다.

오랫동안 서울에 살면서 왜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걸으며 서울 명소를 체험한 적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대다수 서울시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몇 주간 서울성곽길과 고궁을 둘러보며 느낀 것은 성곽길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현대식 건물과 남산, 고궁에서 조망되는 건물들이 유럽의 오랜 도시들의 경관과 매우 다르다는 점이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구성된 유럽 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역사와 현대가 얽혀 있는 복합적 이미지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서울 도심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계획되어야 할까.

첫째, 서울 도심의 개발 밀도를 무조건 억제할 수는 없다. 서울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통근시간이 가장 길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멀리 떨어진 비효율적 공간구조 때문이다. 서울 강북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인 48%가 살지만, 강북권 주요 중심지 종사자 비율은 13.5%에 불과하다. 강남권 주요 중심지 25.9%의 절반 수준이다. 여전히 서울은 강남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이로 인한 장시간 통근과 교통 혼잡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그나마 강북권에서 유일하게 중심성이 높은 서울 도심의 밀도를 억제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역사문화유산을 고립된 장소로 볼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 호흡하는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세운상가는 종묘와 남산 사이에 위치한다. 세운상가 부지에 새로운 도심 녹지축이 조성될 경우 창경궁과 종묘의 녹음이 남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생태축이 된다.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새로운 공공 공간이 탄생하며 이는 재개발이 아닌 단순 재정사업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다. 낙후되고 단절된 공간과, 시민의 쉼과 녹음을 담은 새로운 도시숲 중 어느 것이 시민을 위한 대안일까. 선택의 방향은 명확하다.

셋째, 역사문화유산 주변의 현대 건물이 경관을 해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미 서울 도심에는 고층건물이 밀집해 있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에서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을 모두 철거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현대 건물과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관을 창출할 수 있다. 역사문화유산에서 조망되는 건물들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건물의 상층부를 공공에 개방해 문화유산과 도시를 함께 바라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관광 자원이 된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만의 독특한 도시 경관은 새로운 자산이 될 수 있다.

서울 도심의 핵심은 ‘보전이냐 개발이냐’의 이분법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삶의 질이다. 효율적인 도시 구조, 녹지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 그리고 역사문화유산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진 경관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서울은 지속 가능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우명제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