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특강을 했을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작가님! 첫사랑 얘기가 궁금해요.” 세상에, 아직도 그런 간지러운 이야기가 궁금할까. 첫사랑이라는 단어 앞에는 늘 ‘시절’과 ‘한때’가 따라온다. 두 단어는 얼굴이 꼭 닮은 자매 같다. 기억의 방에 세 들어 살기 좋은 말들이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좋아하는 이의 과거를 질투하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모습이 예쁘다 여겨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던 날들. 그건 그저 ‘사랑했다’고밖에 쓸 수 없는 젊은 시간이었다.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에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오이지’ 전문)
어떤 시간은 촉감으로 남는다. 손이 차다면서 손깍지를 껴 외투 주머니에 넣어주던 사람. 아프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이마에 손을 대보는 사람. 첫사랑은 어쩌면 그런 온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밀 줄 알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기억이란 재편집되고, 달콤하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라는 걸. 그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이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일이라면, 이별은 나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첫사랑은 그 둘이 겹치는 시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나를 배우는 시간. 그때의 순수는 타인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도 결국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첫사랑의 기억은 미완으로 남는다. 사랑이 완성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짝이 맞지 않아, 늘 어딘가에서 어긋난다. 그 불일치야말로 사랑이 각자의 내면에서 따로 자라는 감정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아마 그런 기억을 ‘사랑’이라 불렀을 것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