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가야산에 가야 해… 경북 성주·경남 합천… 원시림 속 거친 바윗길 올라 기암괴석 전시장으로…

입력 2025-11-13 02:50
기암괴석의 전시장으로 불리는 가야산 만물상 일대가 화려한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멀리 뒤쪽에 상왕봉과 칠불봉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국내 아홉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가야산(伽倻山)은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을 아우른다. 주봉인 상왕봉(해발 1430m)을 중심으로 1000m 이상의 봉우리와 병풍처럼 줄지은 기암괴석으로 웅장하고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합천 지역에서는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이, 성주 쪽에는 1만 가지 바위 형상과 아찔한 절경을 품은 만물상(萬物相) 코스가 인기다.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에서 올라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칠불능선 탐방로’가 52년 만에 지난해 개방되면서 ‘성주 가야산 시대’를 열었다.

법전리에서 출발하면 먼저 ‘빙 둘러서 가는 길’이라는 의미가 있는 ‘가야산 에움길’(법전리~봉양리 구간)을 만난다. ‘봉양법전 탐방로’라고 적힌 입구가 가야산 에움길의 시작을 알린다.

인근에 마수폭포가 있다. 폭포가 크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수량을 쏟아낸다. 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신라 때 마수라는 용맹한 청년이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왕이 관직을 하사하려 했지만 이를 마다하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마을 사람들은 폭포에서 마수가 용이 돼 마을을 지킨다고 믿었고, 그의 덕을 기려 마수폭포라 부르고 있다. 계곡물이 대나무밭을 적셔 죽전폭포라고도 한다.

신라 시대 용맹한 청년의 전설을 품은 마수폭포. 암벽 사이로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진다.

약간의 오르막을 30여 분 걸으면 오른쪽에 ‘칠불능선 탐방로’라 적힌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과거 지역민들이 이용하던 옛길이었지만 52년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숲은 빽빽한 원시림으로 변모해 있다. 그 사이로 높고 날카로운 바윗돌과 철계단이 험한 산행길을 안내한다. 모두 4개 설치된 철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지만 뒤돌아보면 시원한 전망을 안겨 준다. 칠불봉과 상왕봉을 오른 뒤 반대쪽 만물상 코스로 향한다. 오르내림이 많고 손발을 다 사용해야 하는 바윗길이다. 대신 기암괴석의 경관과 울긋불긋 단풍이 수고를 보상해 준다. 하늘로 솟구쳐 있는 바위 모습은 조각품 전시장 같다.

칠불능선 탐방로 출발지인 법전리 인근 신계리 가야산 기슭에 ‘만귀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1m 정도의 석축 위에 올라앉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다. 만귀산방(晩歸山房)이라 적힌 현판이 있다.

조선 후기 공조판서를 역임한 응와 이원조(李源祚·1792~1871년)가 말년(1851년)에 귀향해 독서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는 1792년 성주의 한개마을에서 태어났다. 유학과 문장에 있어 유림의 으뜸으로 추앙받았고 지방관으로서도 많은 치적을 올렸다.

계곡 옆 벼랑 위에는 한 칸짜리 자그마한 집이 있다. 400년 된 소나무를 벗하며 폭포를 내려다보는 자리다. 현판에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라 적혀 있다. 일만 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로 내려온다는 뜻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이 결국은 하나의 이치로 귀결된다’는 만수일리(萬殊一理)의 철학을 담고 있다.

가천면에서 찾아볼 또 하나의 산은 금봉리 독용산(995m)이다. 이곳에 가야시대에 쌓은 독용산성이 있다. 성 내부에 계곡을 두고 좌우로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 7.7㎞, 높이 2.5m, 폭 1.5m 규모로 영남지방의 산성 중에서 가장 크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험악할 뿐 아니라 한쪽으로는 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다. 성내에 4개의 연못과 2개의 샘이 있어 물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기 쉽다는 장점을 지녔다.

거칠고 높은 산이지만 쉽게 오를 수 있다. 독용산 정상 인근까지 차를 몰고 오를 수 있도록 포장 임도까지 개설돼 있다. 하지만 폭이 좁은 데다 대부분 구간이 가드레일 없는 아찔한 벼랑길이어서 운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후 비포장 길은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가기 힘들 정도로 거칠다.

가천면 금봉리 금봉파크골프장 뒤꼬불꼬불 위태위태한 임도를 천천히 기다시피 20분가량 차를 몰면 닿는다. 6㎞ 남짓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 임도 가장자리에는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굽이를 돌 때마다 붉은빛·주황빛을 띤 단풍이 빼어난 조망과 함께 펼쳐진다.

영남 지방 산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가야 시대 독용산성. 왼쪽에 동문루가 복원돼 있다.

넓은 공터에 주차하고 걸어서 독용산성까지 간다. 별로 멀지도 않고 길도 아주 평탄하여 가벼운 산책을 하는 정도다. 성곽이 보이는 곳에서 약간 가파른 산을 오르면 성문(동문루)에 닿는다. 멀리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성주호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풍철 가야산에서 홍류동 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계곡물마저 붉게 보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농산정(籠山亭)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열아홉 개 명소가 있다. 해인사 일주문인 홍류문을 지나 400여m를 가면 최치원이 말년에 세상을 멀리하고 이곳에 들어 은거하며 살던 농산정을 만난다. 달빛에 잠겨있는 연못 제월담(霽月潭)을 지나면 꽃이 떨어진 연못 낙화담(洛花潭)이다. 홍류동 계곡 중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여행메모
칠불능선 2.8㎞ 3시간 30분
해인사 무료 입장·유료 주차

홍류동 계곡 가운데 경치가 가장 빼어난 낙화담 일대.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쾌하다.

가야산 칠불능선 탐방로 들머리인 법전리 1108-2번지에는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다. 이 코스는 2.8㎞로 짧지만 급경사가 많아 3시간 30분 이상 걸린다. 정상에서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로 빨리 하산하고 싶으면 만물상 코스 대신 용기골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30분~1시간 절약할 수 있다. 이곳에서 법전리 공영주차장까지는 콜택시를 이용해 돌아가면 된다. 법전리와 봉양리를 잇는 봉양법전 탐방로는 임도로, 차량과 이륜차 통행이 금지돼 있다.

만귀정 바로 앞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주차할 곳이 없다. 초입에 임시주차장이 있다. 만귀정까지 400m 정도 걸어가면 된다.

홍류동 계곡에 있는 해인사 쪽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주차비를 내야 한다. 승용차 기준 4000원이다. 입장료는 무료다.



성주·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