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란 이렇게 사는 것’ 제자로 배운 장천의 사역 계승”

입력 2025-11-13 03:22
최이우(왼쪽) 목사가 2018년 서울 성북구의 한 식당에서 김선도 목사에게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이 적힌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김선도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의 제자들은 목회가 막막할 때면 스승의 호 장천(杖泉)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제자들에게 김선도(1930~2022) 목사는 살아서 스승이었고, 별세한 뒤에는 신앙의 지침이 됐다. 김 목사 별세 3주기를 맞아 최이우(74) 유기성(67) 박동찬(64) 목사를 만나 이들이 기억하는 ‘스승 김선도’ 이야기를 들었다.

“장천, 내 목회의 본보기”

1976년 감리교신학대 한 강의실 교탁 앞. 갈색 체크무늬 양복 차림의 김 목사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007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당시 신학교 4학년이었던 최 목사는 스승의 기품에 압도당했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최 목사는 50년이 다 돼가는 장천의 첫인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최 목사는 “강의 시간이 되면 맨 앞자리에 앉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필기를 하고 최고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강의에서의 가르침을 넘어 내 안에 바람직한 목회자의 표상으로 김 목사님을 세웠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때 맺은 사제 관계는 이후 광림교회 담임목사와 부목사로 일한 5년 4개월을 포함해 47년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최 목사는 “김 목사님은 앞서가시며 우리에게 ‘목회자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83년 목회자와 당회원 모두가 참석한 경북 경주 수련회 첫날 저녁 김 목사는 ‘광림교회의 5대 전통’을 발표했다. 적극적인 신앙, 풍요로운 창조, 성실한 생활, 사랑의 실천, 일치된 순종. 최 목사는 “이날 발표한 전통은 구호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교회 안의 구체적인 사역으로 이어졌다”며 “누구나 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김 목사님은 끝까지 그 전통을 붙들며 성실하게 실천하신 분”이라고 전했다.

품고 가르친 신앙의 아버지

유기성 목사가 최근 경기도 성남 위지엠 사무실에서 김 목사와 겪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잘하는 것 없는 내게 하나라도 챙겨주시고 어떻게 해서든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최근 경기도 성남 위지엠 사무실에서 만난 유 목사는 “내게 김 목사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며 “가까이하기엔 멀었고 엄하기도 엄하셨지만, 사랑이 참 많으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유 목사가 경기도 여주의 미자립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때 김 목사는 그에게 선교비를 지원했다. 첫째를 임신한 유 목사 아내가 난산 위기에 있을 때는 먼저 이를 알아채고 의사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유 목사는 “김 목사님은 6·25전쟁 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선한 분이란 걸 확신하셨다”며 “확신 속에서 전한 설교의 메시지엔 남다른 힘이 있었고, 말씀한 대로의 삶을 사시려고 노력하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김 목사의 목회 태도 또한 청년 시절부터 목회를 마무리할 때까지 유 목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은퇴 전 마지막 설교를 앞두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마음이 힘든 상황이던 2022년 유 목사에게 김 목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유 목사는 “김 목사님 입관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제 마음속에 ‘은퇴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순간은 죽음’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해지더라”며 “마음속 복잡하게 요동쳤던 은퇴에 대한 부담감은 사라지고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뜨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님을 존경했기에 오히려 다정다감하게 사적인 고민을 나눠본 적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형태든 제게 영적 메시지를 주셨다”고 밝혔다.

장천기념사업회의 미래

박동찬 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경기도 고양 일산광림교회에서 김 목사의 서류 가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천기념사업회장인 박 목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방황하던 시절, 광림교회에서 김 목사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최근 경기도 고양 일산광림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박 목사는 대뜸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김 목사가 사용하던 서류 가방이었다. “목사님께서는 늘 무언가를 메모하셨는데 그 습관을 저도 배웠습니다. 바로 이 가방에 목사님의 메모 노트가 들어있었죠.” 40년 넘게 지켜본 제자에게 그 가방은 스승의 신실함을 상징하는 유산과도 같다.

스승을 통해 ‘삶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배웠다는 박 목사는 “말이 아닌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특히 김 목사의 투명한 재정 사용이 자신의 목회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했다. “교회 돈 10원이라도 남으면 교회에 환입시키라고 하셨어요. 10원까지도 정확하게 하시며 하나님 앞에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엎드려 기도하시던 모습이 본이 됐습니다.”

박 목사는 김 목사의 목회 유산으로 창의성도 언급했다. 교회를 민방위 훈련 장소로 내어주고, 환경미화원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등 사회에 필요한 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목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장천기념사업회는 북한 복음화와 통일 준비, 구제 사역, 다음세대 지도자 양육 등 세 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천기념사업회는 김 목사가 ‘삶으로 남긴 유산’을 다음세대에 전하는 사역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목사는 “김 목사님은 목회뿐 아니라 사회 그늘진 곳, 장학 사업 등 모든 면에서 종합적인 목회를 하셨다”며 “사업회를 통해 교회들이 보다 폭넓은 목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최 목사 제공, 신석현 포토그래퍼

성남·고양=박윤서 김아영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