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시작하면 최고에 올라야 직성이 풀렸다. 컴퓨터 강사, 국악원 대표, 반려견 훈련사까지 세 번이나 직업을 바꾸면서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열정이 늘 그를 한계로 몰아붙였지만 성취와 물질적 풍요로 보상받았다. 쉰을 앞둔 2021년 8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하던 중 승압제 부작용으로 손·발가락을 모두 잃게 될 때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손길 덕분이었다. 반복된 훈련 끝에 민화를 통해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은 김단영(53) 작가의 이야기다.
최근 인천 강화군 교산교회(박기현 목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단영아, 제발 쉬어라’ 하는 신호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주셨지만 애써 무시하며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열 개의 손가락은 사라졌지만, 대신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제게 선물로 주셨다”며 잠시 울컥한 그는 이내 미소지어 보였다.
손가락과 발가락 절단 수술을 받기 전까지 김 작가는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수술 후 통증과 싸우며 ‘다시 손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펜을 잡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컬러링북 채색이 그림의 시작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독학한 지 3년여, 그는 어느새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한국민화협회 특선을 비롯해 한국민화진흥협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등에서 입선할 만큼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지역 학교와 교육청 등에서 민화 수업도 진행한다. 손을 잃고 그림을 얻은 기적이다.
워십과 간증 영상을 틀어놓고 한지에 한 줄 한 줄 선을 그려 넣고 색을 입히는 작업은 요즘 그의 일상이다. 김 작가는 거의 남지 않은 손가락 마디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스스로 ‘조막손 작가’라 부른다.
“사람들이 종종 ‘손이 불편한데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물어보세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해요. ‘그림은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존재의 증명입니다.’ 붓 하나 들기까지 흘린 눈물 뒤엔 저의 회복과 감사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은 기도이며 고백이기도 하죠.”
김 작가는 강화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회인 교산교회에 다니고 있다. 백혈병 치료 후 요양을 위해 강화로 내려왔지만 정착할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미술 모임에서 교회 사모를 우연히 만난 게 인연이 됐다. 김 작가는 이 교회 출석 3개월쯤 지나 교회 벽에 그려진 낡은 선상 세례 벽화를 새로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발가락이 없어 균형을 잡고 서 있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렇게 미국 감리교의 조지 존스 선교사가 1893년 배 위에서 세례를 집전한 장면이 완성됐다. 그 과정엔 교인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다.
이후 김 작가는 방송실 담당으로 봉사하는 등 다양한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김 작가는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손으로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박기현 목사는 “김 집사님의 모습을 통해 교인들이 힘을 얻기도 하고, 반대로 집사님이 교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받기도 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여전히 통증에 시달린다. 수술 후 환상통으로 인해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다. 밤잠도 자주 설친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신앙이 깊어졌다. 그는 “돈을 많이 벌던 시절엔 재력을 과시하듯 일부를 헌금했는데 지금은 가진 것 전부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색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그에게 깊은 위로가 된 데 이어 다른 이들에게 ‘살아있는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되는 민화를 그리며 스스로 치유됐어요. 절망 끝에서 피어난 제 그림이 다른 사람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강화=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