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아닌 잔치”… 부활의 언어로 장례를 말하자

입력 2025-10-28 03:02
배우 신애라(오른쪽)씨가 최근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엔딩파티’에서 부친 신영교(왼쪽)씨를 향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이패밀리 제공

한국교회가 부활의 언어로 장례문화를 재정의하고 있다. 죽음 교육을 생명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신앙훈련으로 전환하고 복음적 가치를 담은 장례 모델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산과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푸른 잔디밭.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야외 공간에 50여명의 가족이 둘러앉았다. 마당 한쪽에는 흑백 결혼사진부터 손주들과 함께 찍은 최근 사진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켜켜이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엔딩파티 현장 신영교씨 부부 사진.

이날 모임의 주인공은 빨간 넥타이에 중절모를 차려입은 신영교(89)씨. 그는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감사를 전했다. 최근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진행된 ‘엔딩파티’의 모습이다. 배우 신애라씨의 부친이자 동요 ‘시소’의 작곡가인 신씨는 살아있는 동안 가족과 그간의 삶을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잔디밭 위 스크린에 신씨가 살아온 인생을 담은 영상이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살았던 삶, 부인과 걸어온 여정 등 90년의 세월을 풀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영상 속에서 ‘시소’의 가락이 흐르자 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영교씨의 흑백 가족 사진.

신씨는 “돌아보면 모든 날이 은혜였다. 잠깐 주저앉았던 순간조차도 저를 살리신 손길이 있었다”며 “충만한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끝내 노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소천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제26대 감독회장 신경하 감독의 장례식은 한국 기독교 장례문화의 전범으로 부를 만하다. 빈소도 조화도 부의금도 없었다. 대신 조문객들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가 제공됐다.

지난달 소천한 신경하 감독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헌화하는 장면. 국민일보DB

생전 신 감독은 훗날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올 조문객을 위해 장례 식사비용을 직접 마련했다. 조문객이 부담 없이 조문할 수 있도록 대접하고 싶었던 고인의 마지막 배려였다.

지난 5월 서대천 홀리씨즈교회 목사는 95세 모친을 천국으로 보내며 천국환송예배를 드렸다. 서 목사는 부고장에 ‘이 시간은 이별이 아닌 기쁨의 잔치로 기억되길 소망하오니 검정이나 회색이 아닌 밝고 따뜻한 복장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적었다.

실제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은 검은 상복이 아닌 하늘색 정장과 원피스로 조문객을 맞았다. 조문객들도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찬양과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장례가 아니라 부활의 축제였다.

기독 장례문화를 담은 영화 ‘투헤븐’을 제작한 김상철 감독은 장례 개혁의 핵심을 우상숭배 청산으로 꼽는다. 검은색 상복과 완장 문화, 제사 등 유교적 전통이 기독교 신학과 충돌함에도 친족들의 압력과 관습의 힘으로 지속됐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특히 언어의 변화가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봤다. 그는 27일 국민일보에 “죽음을 뜻하는 ‘고 김상철’ 대신 부활 신앙을 담은 ‘하늘 시민 김상철’처럼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선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기독교 장례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경하 감독의 장례식에서 장례준비위원장을 맡은 김종훈 목사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기독교적 해석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이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성찰하고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영적 각성”이라며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 즉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고 전했다.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고인이 없는 비대면 장례’를 한국 장례문화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장례식이 3인칭의 죽음을 1인칭의 죽음으로 전환하는 영적 각성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곱은 죽음 직전 자신의 장례에 대해 구체적인 의사를 작성했고 자녀들에게 축복하며 죽음의 계획을 완성했다. 장례는 복음과 치유, 가족의 화목을 위한 설계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패밀리는 환경 보호를 위한 ‘녹색장례’ 감염병 예방을 위한 ‘보건장례’ 고인 중심의 대면 장례를 지향하는 ‘선진장례’ 비전과 함께 항온·항습·항균 기능을 갖춘 교회형 장례 플랫폼 ‘레스텔’을 선보였다. 송 목사는 “교회는 ‘죽음 학교’를 운영해 성도들이 평소 죽음을 충분히 성찰하고 준비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박윤서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