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만성질환도 빈부 격차… 매일 약 한움큼 먹는 저소득층 3배 늘어

입력 2025-10-09 18:19

고혈압과 당뇨 등 복합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 가운데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저소득층 규모가 7년 사이 3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소득별 건강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등 건강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다제약물 복용자 소득분위별 현황’을 보면 올해 8월 기준 서로 다른 성분의 약을 10종 이상 복용하고 있는 만성질환자 가운데 소득 1~2분위(하위 20%) 수는 40만191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7년 전인 2018년(12만6375명) 대비 3.18배 늘어난 규모다. 전체 다제약물 복용자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28.1%로, 같은 기간 11.3% 포인트 증가했다.


건강 상태에는 흡연과 음주 같은 개인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규칙적인 생활이 어렵고, 소득이 낮고 생활 환경이 열악할수록 자발적인 건강 관리는 더욱 어렵다. 만성질환은 이 같은 환경과 습관이 누적된 결과다.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 중인 만성질환자가 가진 대표 질환은 당뇨병, 고혈압, 무릎관절증, 만성 위염·요통 등이었다. 최근에는 인구 고령화도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 환자 비율은 2021년 13.2%로 주 상병 10순위에 들어선 뒤 올해는 15%로 증가했다.

보건학계에선 만성질환자의 건강 관리가 약물 처방에 치우치면서 저소득층의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의료진은 손쉬운 약물 처방에 의존하고, 돈과 시간이 부족한 저소득층은 건강 관리보다 병원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병의원에서 의료진이 식이·운동요법을 충분히 병행시키기보다 약물 중심의 질환 관리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건강 유지에 필요한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취침 등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도 노동시간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라면서 “장시간 노동, 잦은 야간·교대 근무 등 개인 노력만으로 교정이 어려운 환경에선 복합적인 만성질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소 의원은 “소득이 낮을수록 만성질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국가는 예방 단계에서부터 소득 수준에 따른 건강 격차를 줄이고, 만성질환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