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일본 총리 취임이 유력시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공명당과의 연립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연립 구성이 늦어지면서 총리 지명을 위한 임시국회 소집일은 오는 21일 전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체제’가 출범 초기부터 시련을 겪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니치신문은 9일 자민당과 ‘중도 보수’ 공명당의 연립 협의가 난항에 빠져 오는 15일로 예상됐던 새 내각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민당은 총리 지명 선거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일을 21일 전후로 미루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재의 강경 보수 색채 등이 연립 구성 난항 이유로 꼽힌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는 총리 재임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여자 아베’로 불린다. 다카이치는 1990~2000년대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 우익 성향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특히 1995년 일본 식민 지배와 침략에 반성의 뜻을 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를 겨냥해선 “멋대로 대표해 사과하면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다카이치가 보수층 지지를 등에 업고 총재로 취임한 만큼 새 일본 내각은 중도 온건파인 현 이시바 시게루 내각보다 우경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자민당과 연립 정권을 구성해온 공명당에선 다카이치의 성향을 우려해 연정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지난 4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과도한 외국인 배척, 비자금 스캔들 등 3가지 문제점을 거론하며 “우리 당 지지자들의 불안과 걱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연립 정권은 없다”고 밝혔다. 다카이치는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지에 대해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오는 17~19일 야스쿠니신사에서 열리는 추계 예대제 참배도 보류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사이토 대표는 지난 7일 다카이치와 회담 후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외국인 정책에 대해선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 후원금 규제 강화를 놓고 자민당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토는 8일 “연립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총리 지명 선거에서 다카이치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선 일반적으로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에 취임하지만 현 여소야대 정국에서 연립 구성이 없다면 국회 선거 향방을 장담하기 어렵다.
새 내각 출범이 더 늦어지면 이달 말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새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등 외교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