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33) 본격적 미국 적응 훈련… IMG와 계약하고 Q스쿨 도전

입력 2025-01-16 03:04
최경주 장로가 2015년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뉴시스

다짐을 영어로 크게 써서 벽에 붙이고 약속서는 식탁 유리 밑에 넣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보면서 다짐했다. 아내 말대로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해 나가니 자신감이 쌓였다.

본격적으로 미국 적응 훈련에 들어갔다. 먼저 어떤 음식을 먹어야 체력이 잘 유지되는지 실험했다. 18홀을 다 돌 때까지는 식사할 수 없으니 경기하는 동안 배고프지 않고 지치지 않아야 한다. 소시지와 달걀 프라이 같은 양식으로 먹어 봤다가 어떤 날엔 밥에 국과 찌개를 곁들인 한식을 먹어 봤다. 돌아가며 시도해 보니 양식을 먹었을 때 든든함이 의외로 오래갔다. 미국에서 경기하더라도 먹는 것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다음엔 시차 극복 훈련을 했다. 미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부지런히 다니려면 시차 적응은 필수다. 스스로 몸을 괴롭혔다. 2시간, 3시간, 9시간을 잔 다음에 라운딩을 해봤다. 잠자는 시간이 짧으면 피곤하고 괴로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누우면 금세 잠드는 스타일이라 수면 시간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겠다 싶었다.

문제는 영어였다. 기초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말과 글을 동시에 배우려니 버겁고 졸리기만 했다. 고민 끝에 영어 공부할 시간에 연습을 더하고, 대신 고3 영어 과외까지 했던 아내만 믿기로 했다.

1998년 퀄리파잉(Q)스쿨에 도전할 채비를 하던 차에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IMG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게 됐다. “우선 유러피언 투어에서 뛰게 해 주십시오. 1년에 열 군데 정도는 출전하고 싶습니다.”

계약을 위해 찾아온 IMG 이정한 이사에게 조건을 제시하자 최대한 많이 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해줬다.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받게 됐으니 이제 세계 무대를 누비며 다닐 일만 남았다. 호랑이가 될 준비가 된 것이다.

같은 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노에서 열린 Q스쿨에 도전장을 냈는데 예선 1차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탈락 원인 분석에 나섰다. 우선 터프한 러프가 문제였다. 미국의 러프는 1타 만에 빠져나오는 게 감사할 정도로 길다. 러프에 빠지지 않으려면 샷의 정확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또다시 연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음 원인은 한국과 다른 미국의 코스 길이였다. 당시 나는 평균 비거리가 290야드(265m)를 넘나들어 국내 최장타자였다. 1997년엔 드라이빙콘테스트에서 326야드(298m)를 날려 우승한 적도 있다. 비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선 체력을 보강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보다 빠른 그린 스피드가 문제였다. 5배 정도 빠른 것 같았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저만치 달아나서 당황스러웠다. 퍼터 잡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마음을 다잡고 전략을 다시 짰다. 유럽과 아시아 쪽으로 우회해서 미국 진출의 기회를 잡아 보기로 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