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몇 명이 훌라 춤을 배우고 있다고 근황을 전해 줬다. 춤이라는 행위와 오백만 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훌라란 춰본 적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미지의 대상이지만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훌라의 흐르는 듯한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파도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각자가 살면서 바라본 바다가 모두 다른 종류의 것이기에 훌라에는 정답이 없으며 각자의 훌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같은 선생님에게 배웠더라도 부산에서 나고 자란 친구의 훌라는 보다 거칠고, 동남아의 따뜻하고 잔잔한 바다 곁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의 훌라는 유연하고 부드럽다고 했다.
오래전 하와이에는 문자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훌라가 일종의 수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와이는 신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오래전 하와이 사람들은 훌라를 통해 자신들의 다채로운 신화를 묘사하고 후대에 전승했다. 춤이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훌라 춤을 통해 대화하고 이야기와 지식을 교환하는 하와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마 그들이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를 것이다.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기에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무의식에 새기지만, 훌라 춤의 움직임은 가변적이며 하나의 신체 위에서 다채로운 방향으로 펼쳐지므로 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는 보다 비선형적인, 하나의 움직이는 덩어리와 같은 모습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훌라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춤은 누구도 해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공격하지도 않는다. 함께 모여 있되 각자의 리듬에 맞춰, 각자의 바다를 표현할 뿐인 움직임이 가진 아름다움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먼 미래, 바다 근처 어디에선가 나도 훌라 춤을 배우고 있을지 모르겠다. 몸치인 나도 그곳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