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움켜쥔 자에서 용납받는 자로’

입력 2024-08-19 03:03

야곱 이름 뜻은 ‘움켜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움켜쥐면서 살았습니다. 형의 발뒤꿈치를 움켜쥐고 세상에 나왔고, 장자권을 얻어내기 위해서 형도 아버지도 속였습니다. 에서의 분노를 피해 라반 집으로 가서도 그는 움켜쥐는 자였습니다. 속이는 라반에게서도 아내들과 자녀들, 수많은 짐승을 얻어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고자 한 이유도 움켜쥔 것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도망하는 과정에서 라반을 만나 극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바로 그때 에서를 만나게 됩니다.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400명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두려운 야곱은 가족들을 네 그룹으로 나눕니다. 실바와 빌하, 레아, 그리고 라헬로 나누고 그 속에 각 자녀와 짐승을 나눕니다. 그 이후에 교육을 합니다. 에서를 만나게 되거든 “이 모든 것은 에서의 것입니다. 야곱은 뒤에 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움켜쥔 것을 모두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자기 목숨도 위태롭습니다. 결국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자기 혼자만 남고 모두 강을 건너보냅니다. 에서가 가까웠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아 하루를 지내며 강을 건넌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알듯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겨루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야곱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다음 날 야곱은 땀에 젖고 지쳤습니다. 그리고 장애가 생겼습니다.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에서가 보이자 그는 절을 하며 걸어 나갑니다. 절뚝거리며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고 제대로 앉을 수가 없어 넘어지듯 쓰러져 절을 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일으킵니다. 또 절뚝거리며 겨우겨우 걸어가고 쓰러지며 절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일으킵니다. 그렇게 일곱 번째 절을 하는 순간 에서가 달려와 야곱을 끌어안고 웁니다. 죽이러 왔던 형에게 형제애가 감당할 수 없게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축복해달라며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은 ‘환도뼈가 부러졌다’입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탈진과 장애’였고, 그로 인한 절뚝거림과 넘어짐이었습니다. 처음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이 얼마나 부자가 됐는지를 말하던 야곱이 아닌 지치고 장애를 입은 야곱이 형으로부터 용납을 받게 된 축복이었습니다.

움켜쥔 것만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이와 겨루어 이기기 위해서 살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까지도 이겼다. 더 이길 사람이 없다. 이제는 움켜쥐는 삶이 아닌, 이기려 드는 삶이 아닌 용납을 받는 삶, 용서를 받는 축복을 알아가라’하시는 ‘부러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움켜쥔 것만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은 용납받는 삶입니다. 움켜쥐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삶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용납하는 곳이 없다면 두 손 가득 쥔 삶도 후회뿐입니다. 움켜쥔 야곱이 아닌 용서를 받고 용납받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이 되길 원합니다.

이주헌 목사(성남 바른교회)

◇바른교회는 경기도 성남시 가천대 옆에 있으며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교회입니다. 청년사역과 교회에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