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요한의 광야에서

입력 2024-04-06 03:03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네가 있는 곳은 어디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요한 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가 살았던 광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요단강에서 베푼 세례입니다. 인류 역사에 요한과 같은 인물은 없었습니다.

요한은 제사장 집안인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종교 권력의 최정점, 기득권 중의 기득권을 가진 금수저였습니다. 요한이 살던 때는 로마제국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통치한 지 15년이 되는 해였는데 그는 폭군으로서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는 정치적인 종교 권력자였던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로 그들은 희대미문의 악당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이 유대 광야로 뛰쳐나간 이유는 그가 ‘정의’와 ‘공의’로 가슴이 불타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광야 생활은 시대를 향한 탄식이고 고뇌였습니다.

그런 요한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됐습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는 온 이스라엘에 어마어마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는 일찍이 역사에 없던 소리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런 요한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요한에게 다짜고짜 심문합니다. “당신이 누구요.” 이런 심문에 어째 요한의 답변이 이상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러면 당신이 엘리야요.” 그러자 요한은 즉시 “나는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선지자요.” “아니오.” 요한의 대답은 점점 짧아졌고 그의 부정은 점점 더 강화되었습니다. 요한처럼 이렇게 세 번이나 거듭해서 자신을 강하게 부정할 수 있을까요. 거듭된 질문에 요한은 마지못해 자기 정체를 밝힙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소리는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 한시적으로 있다가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요한은 자기를 외치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외치는 자(者)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비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교회 위기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생일대에 광야의 요한과 예수님을 다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우리가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제자도의 대가가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를 거절하는 자기부정입니다. 우리도 유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요한을 배웁시다. 아니, 요한을 넘어서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자로 다시 출발합시다. 그럴 때 교회가 새롭게 됩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박은호 목사(정릉교회)

◇서울 성북구 정릉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소속 교회입니다. 고찰들이 터 잡은 지역에 1942년 하나님 나라 복음의 씨를 심었으며 인본주의에 저항하면서 지속적인 하나님 나라를 발현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