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대들이 최대 4000명에 가까운 정원 확대를 요구한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입시 현장은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사설 입시업체들은 합격 커트라인 하락을 내다보면서도 n수생 유입 때문에 고3 수험생에게 의대 문호가 넓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상위권 변별력 확보가 중요해지고 특히 영어가 절대평가여서 올해 같은 ‘불수능’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21일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정시 의대 합격권은 현재 국어·수학·탐구 영역의 백분위 평균이 95.3점이다. 의대 정원이 현재보다 1000명 늘어나면 백분위 평균은 94.5점으로, 2000명 증원 시 94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증원 폭이 3000명 규모가 되면 93.5점까지 점수가 내려가고, 4000명이면 93점으로 떨어진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뿐 아니라 성균관대, 서강대 최상위 학과 합격권이면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은 현재 진행 중인 2024학년도 대입에도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의대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재수나 반수(대학 재학 중 대입 재도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험생이 많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위권에서 소신·상향 지원 패턴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려운 수능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더라도 n수생 유입으로 수능의 변별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출제 당국은 당해 수험생의 학력 수준을 측정해 난이도를 조절한다. 난이도는 결국 수험생이 체감하는 어려움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과 9월 두 차례 모의평가 결과 분석을 토대로 수능을 낸다.
두 차례의 모의평가에 n수생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n수생뿐 아니라 반수생 규모와 학력 수준까지 예측하긴 어렵다. ‘불수능’과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난도를 낮추기 어려운 이유다. 출제 당국 입장에선 의대를 지원하는 실력 있는 n수생이 다수 응시한다고 가정하고 변별력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올해 수능은 ‘킬러문항’ 배제 지침이 적용된 첫 수능이었으나 매우 어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만점)이 140점 중후반대로 상당히 변별력이 높았고, 전 과목 만점자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대를 노리는 n수생 증가로 당분간 수능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난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