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중순 일본 도쿄도 시나가와구 보건소에 희한한 코로나19 확진자 통계 그래프가 뉴스 화면에 잡혔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보건소 벽면에 있던 그래프가 벽을 타고 천장까지 이어졌다. 황당한 건 직원들이 이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의 디지털 후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일본은 전자문서 대신 손으로 작성해 팩스로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집계했다. 누락·중복이 속출했다. 재난지원금도 우리는 모바일로 간단히 신청과 지급 절차를 밟았는데 일본은 일일이 우편 신청을 받고 개인정보를 확인하느라 지급까지 반년 가량 걸렸다. 양국의 디지털 격차, 디지털 정부 능력에 대해 한국인들이 우월감을 느끼며 이른바 ‘국뽕’에 빠졌었다.
오늘날 디지털 정부의 시작인 ‘대한민국 전자정부(www.egov.go.kr)’는 2002년 11월 출범했다. 초고속통신망 보급률 세계 1위 답게 출범 한 달 만에 접속건수 400만건, 등록회원 10만명을 돌파했다. 이제 주민등록 등·초본, 인감증명서 등은 온라인 처리가 당연시되고 있다.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한국은 2002년 세계 15위에서 2010년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순위는 3위로 명실상부한 디지털 선도국이다. 윤석열정부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표방했다.
최근 발생한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는 이런 자부심에 생채기를 남겼다. 민원서비스 통합 포털인 ‘정부 24’는 물론이고 민원 현장에서의 오프라인 처리까지 멈췄다. 급기야 수기(手記) 처리가 진행됐다. 사달이 났을 때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디지털 정부 홍보를 위해 해외 출장 중이었다는 점은 코믹스러울 정도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디지털 개표 처리가 불신을 받자 내년 총선부터 수개표를 고려키로 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수기와 수개표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디지털청을 발족하고 수기가 아닌 스마트폰 행정을 다짐했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비웃었다. 국뽕에 취하는 사이 디지털 내실은 무너지고 있었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