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밴드 그린데이의 노래 ‘아메리칸 이디엇’은 가수 조영남의 히트곡 ‘도시여 안녕’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 있다. 유명한 미국 밴드의 2004년 신곡이 이보다 10여년 전 발표된 가요의 멜로디와 유사하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조영남은 과거 한 방송에 나와 “나도 남의 번안곡을 가져다 쓰지 않았냐”면서 쿨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외국 곡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딜라일라’ 같은 노래를 불러 이름을 알렸으니 그 정도 유사성은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그린데이의 노래가 나온 지 7~8년 뒤에야 국내에서 제기된 표절 논란이었다. 최근에는 신곡 발표 직후 표절 의혹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검색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분에 서로 비슷한 곡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이 때문에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일부 작곡가는 아예 ‘창작’을 포기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에 미국이나 일본, 제3세계 등의 노래를 깔아 놓고 멜로디나 곡 구성을 살짝 비트는 방식으로 표절 곡을 만들던 작곡가들의 돈벌이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한국 대중음악의 표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전문가는 “만약 표절 문제를 작정하고 파고든다면 가요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의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수많은 표절 의혹이 흐지부지됐다는 점이다. 유희열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은 ‘무의식의 유사성’이라는 해명을 남긴 채 끝났다. 그의 다른 표절 의혹 역시 사실관계를 따지는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앞서 가수 박진영이 한 드라마의 삽입곡을 표절했다는 논란은 4년 만에 종결됐다. 3심까지 진행된 법정 공방 끝에 2015년 화해권고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표절 여부는 결국 긴 소송 절차를 거쳐 가려지는데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합의가 이뤄지는 사례도 많았다.
앞으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쟁점도 복잡한 인간과 인공지능(AI) 간 저작권 분쟁이 예고돼 있다. 생성형 AI가 어떤 장르든 주문대로 여러 곡을 만들어 들려줄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미 미술, 사진 분야에서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생성형 AI 개발사를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AI 생성물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할지에 대한 논의는 진전이 없다. 한국 저작권법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작의 주체에 AI가 포함돼 있지 않다 보니 당연히 AI의 저작권은 인정될 수 없다. 하지만 AI 생성물에 대한 인간의 개입 정도를 반영해 저작권을 부여하는 새 기준은 머지않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창작 분야에서의 AI 활용도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단체들이 AI의 작곡 훈련에 쓰인 음원 사용료를 청구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과거의 곡을 베끼되 판례상 저작권법 위반 기준만 피해 작곡하도록 훈련할 수 있는 AI의 ‘표절 범죄’를 적발할 수 있을까. 현재 국내 판례를 보면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창작적 표현의 복제 여부, 멜로디·화성·리듬의 실질적 유사성 등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규정돼 있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축적해 표절 여부를 수학 문제 풀듯 계산하게 만든 ‘AI 판사’에게 AI 작곡가의 표절을 잡아내게 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예술적 잣대나 엄격성이 서로 다른 인간 판사나 전문가보다는 AI가 더 빠르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음악 산업의 미래가 더 정교한 AI 작곡가를 개발하는 일에 달려 있을 수 있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