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얼굴에서 빛이 나지 않거나 눈이 맑아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으니 거울을 보며 평소에 밝은 표정 짓는 훈련을 자주 하는 걸 권한다.
나로 말하자면 어찌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지 시내에만 나갔다 하면 길 위의 도인들과 수시로 마주친다. 언젠가는 서울 강남역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도인을 만난 적도 있으니, 이쯤 되면 정말로 내 얼굴 뒤에 후광이 비추는 게 아니라면 내 이마에 그들만이 볼 수 있는 글자로 ‘호구’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길거리 도인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휙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도인들도 그런 방법에는 이미 익숙해진 탓인지 요즘엔 이마저도 잘 먹히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컸던 사람이라 과연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한 번 끝까지 들어볼 요량으로 길거리에서 대화에 응했던 적이 있다. 자칭 도인이라는 사람과 1시간 반가량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조상님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기운이 있으니 굿을 하면 좋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런데 굿 비용이 뜻밖에도 아주 비쌌다. 몇십만원 수준이 아니다. 너무 비싼 것 같다고 말하자 도인은 신용카드 할부도 가능하다고 했다. 단, 그런 경우에는 현금으로 할 때보다 10% 가산금이 붙는다. 너무 계산적인 조상님이 아닌가 싶어서 꽤나 빈정이 상했다. 그보다 길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큰돈을 선뜻 지불하며 굿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그 자체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인들은 진화를 거듭해서 이제는 가게에 찾아오기까지 한다. 손님인 것처럼 책을 둘러보다가 도를 공부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내게 물어보는 게 아닌가. 이곳 헌책방은 나의 홈그라운드! 자신감을 가지고 대답했다. “저는 이미 도를 깨우쳤기 때문에 더 공부할 필요가 없는데요.” 도인은 순간 살짝 당황한 듯하더니 내가 깨우친 도가 무엇이냐며 되물었다.
어렵사리 깨우친 도를 어찌 거저 알려줄 수 있겠는가. 가게에 있는 책을 한 권 이상 사면 도를 알려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랬더니 도인은 정말로 책을 샀다. 2000원짜리 시집 한 권이긴 하지만. 그는 책을 샀으니 도가 뭔지 말해보라고 따지듯이 말했다. “가게에 있는 책이 전부 제가 깨달은 도입니다. 그 책은 2000원짜리지만, 읽어보시면 돈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한 세상 도리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 뒤로 도인은 다시 우리 가게에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시집 속에서 진짜 도를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책 속에 길이 있다. ‘길’은 곧 ‘도(道)’니까 내가 아주 무성의한 답을 한 건 아니다. 오늘도 잠들기 전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이름 모를 수많은 그대들이여.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 진정 도를 아는 사람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