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택 (18) 안양서 병원 개원 즈음 재소자 돕는 사역 시작하게 돼

입력 2023-07-20 03:04
효산 이상택 박사가 2001년 5월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해 초대 회장으로서 축사하고 있다.

내가 재소자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병원 설립 시기와 비슷한 1967년 안양의원 개원 때다. 당시 안양에는 의원이 많지 않았고 교도소엔 의무실은 있으나 낮과 밤에 상주하는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교도소에 환자가 발생하면 병원 환자는 다른 의사에게 부탁하고 급히 교도소로 달려가야 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의료 장비와 영상 의학 및 검사가 필요하면 병원으로 후송해 먼저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당시 교도소 예산 관계로 재소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평소 가난한 이웃과 소외 계층을 치료하는 것을 최우선 사명으로 여겨온 나로서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육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재소자들을 돌볼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아내 황영희 박사도 초기부터 여자 소년원의 촉탁 의무과장으로 봉사했다.

1964년 세워진 안양교도소는 전국에서 가장 큰 시설이었음에도 의무과와 의무실을 갖추지 못했기에 교도소 내에서 환자를 치료할 시설이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환자가 발생하면 우리 병원에서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가 우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 정도에 따라 교도소에서 간단한 치료를 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런 응급처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다. 환자가 미결수이면 환자로서 수감생활을 할 수 있느냐를 법원의 판사가 결정했다. 반면 기결수는 형이 확정된 상태로 수형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지역 검찰청 검사장이 결정했다. 이때 의사는 판사나 검사에게 해당 수감자에 대한 정확한 건강 상태를 의학적으로 고지해야 하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의사의 제일 사명이지만, 이를 방해하는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어렵고 중요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과장하고 부풀려 진단을 어렵게 하기도 하고 가족이나 변호사의 개입으로 사실 이상의 진단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교도 행정 라인을 이용한 외압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정치권 인사와 재벌그룹 회장 등이 재소자로 있을 때 건강 문제로 검진을 받았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경우에 있어서 단호하고 냉정했다. 환자의 처지를 한없이 위로하고 아파하는 마음 때문에 환자의 실제 상태를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의사로서 내 책임이자 소신이다.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이야말로 교도소를 위해서나 환자를 위해 모두 유익한 것이다. 만일 의사가 사실과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법질서는 무너지게 되고 그 피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십 년 이어온 재소자 봉사가 인정돼 정부에서는 98년 나를 법무부 교정위원 전국협의회(현 교정위원 중앙협의회) 초대 회장에 위촉했다. 나중엔 국민훈장도 받았다. 갇힌 자를 돕는 사역을 하면서 재소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이해하고 마음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보람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