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교회는 생명 미학의 공동체

입력 2023-02-24 04:01

‘나뭇가지에 새 눈이 텄네요. 맨몸뚱이로 겨울난 이 나무에 쬐꼬만 쬐꼬만 연두 눈이 텄네요. 새 눈은 아기 눈, 봄이 오나 보네요.’(이원수 동시)

‘똥꽃’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귀농인 전희식 선생이 대소변도 못 가리는 노모와 함께 살면서 겪은 단상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눈물겨우면서도 지은이의 극진한 효심 앞에 숙연해집니다. 노모가 방바닥에 싸놓은 똥 무더기를 보고는 똥꽃이라 부를 정도니 이는 효를 넘어 어떤 경지에 이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갓난아기를 낳아 키우는 엄마도 실은 그렇지요.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유심히 살피고 냄새를 맡으며 아기의 건강을 살피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우리는 다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젊은 시절 결핵 판정과 함께 한평생 아픈 몸으로 세상을 사신 분입니다. 경북 안동의 조그만 교회 종지기로 일생을 사셨고, 마흔 가까이 돼 동화를 발표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미 그분의 동화나 삶, 그리고 죽음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조그만 시골교회 종지기를 하실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종을 치는데 문득 자신을 자각하신 것입니다. 아직 캄캄한 시각이지만 고요한 새벽에 지상의 만물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종소리를 듣는 경건한 순간에 자기가 춥다고 장갑을 끼고 있는 게 너무 불경스럽고 죄스러워 장갑을 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추워도 종을 칠 때에는 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가짐이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느냐입니다.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그럴 수 있으셨겠지요. 이런 분이 쓰신 글이니 기교나 화려한 문장은 없어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큰 감동과 두고두고 읽히는 살아 있는 글이 된 것이겠지요.

‘강아지 똥’이란 동화는, 골목길에 강아지가 싸두고 간 한 줌의 똥을 보고도 생명의 순환이라는 깊은 원리를 말해줍니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런 안목과 이해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합니다. 만물의 순환법칙과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통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의 남다른 신앙의 품을 느끼게 합니다.

새봄만큼 우리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요? 곧 다가오는 주님의 사순절에 우리에게도 새 눈이 뜨이고, ‘똥꽃’이나 ‘강아지 똥’ 같은 은총이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마음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세상과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만이 아니라 상하고 아픈 그곳에도 숭고한 아름다움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흐는 “신을 알게 되는 최선의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의 전부도 사랑입니다. 사랑을 놓치고 하는 일들이 후에 큰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가치가 최고임을 나누는 곳이며, 그것을 실천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이 삶이 되는 곳입니다. 생명 미학의 공동체로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끌어안고 희망의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생명이 춤추고 사랑이 노래하는 세상, 예수를 따르는 교회의 몫입니다.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