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 잠이 오지 않더니만 어른이 돼서도 별의별 게 다 궁금해 곧잘 생각에 잠기곤 한다. 참외는 왜 구태여 노랗고 사과는 왜 기어이 빨갈까. 내가 아는 초록색과 저 사람이 아는 초록색은 진정으로 같은 초록색일까.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혹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울리고 웃기고 아프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상에는 묘한 일투성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건 우리 엄마의 행동 양식이다.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위를 서슴없이 일삼는다. 열무비빔밥을 만들 때 고추장이며 참기름은 다 내버려 두고 김칫국물만 넣어 비벼 먹는 이유가 무엇인지. 텔레비전을 보던 중 쿨쿨 잠들었다가도 내가 채널을 돌리려고만 하면 어떻게 그 낌새를 알아채고 리모컨을 사수하는지. 스컹크와 자웅을 겨뤄도 손색이 없는 방귀를 뀌어 놓고서 자기 방귀는 냄새가 안 난다고 어쩜 그리 뻔뻔하게 주장하는지. 사십 년 가까이 고찰해 왔으나 이렇다 할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엄마들은 다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 엄마의 이상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일 저녁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질문을 한다. “어디야? 뭐해? 밥은?” 녹음해 둔 음성을 재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서조차 변하지 않는다. 내 쪽에서 변화를 줘 보려 해도 생활이 단순한 탓에 늘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집이야. 일하지. 냉장고에 있는 거 대충 꺼내 먹었어.” 이런 대화가 일 년에 삼백육십다섯 번 반복되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어째서 늘 같은 질문을 건네는 걸까.
궁금함을 참지 못했던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예상 밖의 질문이 재미있었는지 한바탕 깔깔 웃었다. 그러고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러게, 왜 그럴까?” 하는 말을 되뇌더니만 “아유, 나는 네가 좋은 걸 어떡해!” 하며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을 해왔다. 부모가 자식을 좋아하는 건 참외가 노랗고 사과가 빨간 것처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무얼 하고 무엇으로 끼니를 때웠는지 하루라도 묻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이나 내가 좋을까. 부모가 돼 본 적 없고 될 생각도 없는 나는 그 사랑의 근원이 무엇인지 못내 궁금했다.
그런데 지난 설에 집에 내려갔다가 그 단초를 발견했다. 안방 벽에 걸린 액자에는 바닷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와 아빠가 딸 셋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막내인 나는 젖은 모래의 감촉이 낯설었는지 양반다리를 한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엄마와 언니들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즐거움을 숨길 수 없는 다섯 식구의 얼굴은 햇살처럼 밝았다. 엄마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몹시도 소중한 모양이다. 그러니 액자까지 해 두고서 지난날을 추억할 테지. 하지만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 이뿐만이랴. 열 달 동안 엄마 배 속에서 신세를 졌던 일, 곧이어 세상 밖으로 나와 엄마와 첫인사를 나눴던 일, 엄마를 엄마라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던 일과 아장아장 걸음마를 걸으며 엄마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던 일도 내 머릿속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눈에 선하리라. 내가 가진 엄마와의 추억이 백 가지라면 엄마가 지닌 나와의 추억은 어림잡아 천 가지도 넘지 않을까. 추억이 많은 만큼 그리움도 커져만 갈 테니 나는 엄마의 영원한 짝사랑일 수밖에 없다.
소싯적에 짝사랑깨나 해 보았기에 그 일이 얼마나 애달픈지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내게 보내는 열렬한 사랑을 그대로 돌려줄 자신은 없지만 엄마의 질문에 조금 더 다정히 대답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하루 동안 어떤 일을 얼마큼 했으며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을 지져 먹었는지 볶아 먹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말해 줘야지.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야? 뭐해? 밥은?” 그런데 바보 같은 나는 바쁘다는 동문서답을 하며 전화를 끊어놓고서는 뒤늦게 아차 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나는 못 말리는 기억상실증 환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