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새해 들어 비(非)수도권을 중심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국가 전략 사업을 지역에 추진하는 경우 그린벨트 총량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다만 정부의 정책 방향이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억제하는 그린벨트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고, 지역 살리기 효과도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반도체·방산·원전 등 국가 전략 산업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는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2023년 국토부 업무보고’를 발표했다. 지자체가 주요 사업을 유치하면 그린벨트 해제가능총량 제한을 받지 않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다는 의미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30만㎡ 이하에서 100만㎡ 미만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보고에 담겼다.
정부가 비수도권 그린벨트 규제 완화에 나선 것은 일자리 부족 등으로 청년층 이탈이 심화되는 지역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부산은 동북아 물류 플랫폼 구축, 창원은 국가 산단 조성 등의 이유로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확대를 정부에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도권과 부산권은 그린벨트 해제가능총량 소진율이 각각 79.3%, 79.9%에 달하지만 광주권(70.7%)과 대구권(51.5%), 창원권(44.1%), 울산권(38.8%) 등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난개발 논란을 의식한 듯 ‘원칙 있는 해제’를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 예외를 두는 것은 국무회의 의결을 넘어야 하는 수준으로 견제 장치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토부와 지자체가 함께 그린벨트 해제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개발 우려가 있는 사업은 사전에 걸러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린벨트 추가 해제 가능성에 따른 난개발 우려는 여전하다. 대도시의 ‘허파’로서 보존 가치가 분명한 그린벨트를 최대한 유지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25일 “지자체에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미래를 위해 그린벨트를 최대한 해제하지 말고 정부가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지역균형개발이라는 성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수도권과 부산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은 1999년 최초 배정된 그린벨트 해제가능총량도 소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대도시 근방 그린벨트 지역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해 온 반면 지역 개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탓이 크다. 다만 수도권이나 부산권에 비해 나머지 권역의 개발 유인이 떨어지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산업계에선 정부의 비수도권 그린벨트 완화 방향이 현장 수요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첨단 산업의 경우 대다수 업체가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지방의 그린벨트 규제가 풀린다고 해서 비수도권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그린벨트 해제 관련 쟁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전체적인 해제가능총량을 늘리기보다는 지자체간 해제가능총량 거래를 통해 부족한 그린벨트 해제 물량을 해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