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씁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라스트 맨 스탠딩’

입력 2022-06-14 04:06
6·1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 2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후보자 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하다’라는 신조어가 생길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억세게 운 좋아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승리하는 인물을 일컫는 말’쯤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선거 몇 번 이겼다고 사전 등재 운운은 ‘오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래 나오는 세 번의 레이스를 복기해본다면 아주 얼토당토않은 얘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레이스 1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승전 마지막 4조 경기. 우승 후보인 캐나다의 마크 가뇽, 반칙왕으로 악명 높은 아폴로 안톤 오노, 일본의 타쿠마 나오야 선수 그리고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 선수가 레이스에 나섭니다. 3강 1약 구도입니다. 브래드버리가 최약체입니다. 호주의 에이스지만 ‘월드클래스’들에 명함을 내밀 수준은 아니었죠.

브래드버리는 줄곧 꼴찌로 달립니다. 그러다 마지막 결승선 직전 코너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나오야와 2위 다툼을 벌이던 가뇽이 몸싸움 도중 레이스에서 이탈해 브래드버리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4명 중 2명을 거르는 시합, 3위는 탈락입니다. 짐 싸려는데 나오야가 가뇽에게 반칙을 가했다는 판정으로 실격됩니다. 브래드버리 2위, 이렇게 그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선 후보 면면이 화려했습니다. 교육부장관 출신 현직 교육감인 문용린 후보에게 고승덕 변호사가 도전장을 던졌죠. 문 후보는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유명한 ‘다중지능이론’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교육 심리학의 대가이기도 했죠. ‘천재’ 소리를 들었던 고 변호사는 푸근한 이미지와 입담으로 대중적인 지지가 높았습니다. 용호상박 대결 속 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후보에게 눈길 주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거 직전, 고 후보 딸이 “교육감직에 우리 아버지는 부적절하다”는 충격적 주장을 합니다. 문 후보 캠프가 이를 물어 늘어지자 난타전이 벌어집니다. 고 후보가 연단에서 “딸아 미안하다”라며 절규하는 장면이 유권자 뇌리에 꽂힌 사이 조 후보는 39.08%로 첫 승리를 거머쥡니다. 문 후보와 고 후보는 30.65%와 24.25%씩 나눠 갖습니다. ‘조희연 시대’는 이렇게 막이 열립니다.

레이스 2, 3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준결승. 브래드버리는 디펜딩 챔피언 한국의 김동성, 전 대회 은메달리스트 중국의 리자준, 캐나다의 마티유 투르코, 일본의 노장 테라오 사토루를 상대합니다. 3강 1중 1약 구도, 브래드버리가 1약입니다. 레이스 초반부터 네 선수는 선두 경쟁으로 뭉쳐 달리고 브래드버리가 처집니다. 김동성이 세 바퀴 남기고 리자준과 부딪혀 탈락합니다. 마지막 결승선 코앞에서는 리자준과 투르코가 엉겨 넘어지고 사토루와 브래드버리가 1,2위를 차지합니다. 일본 선수가 반칙으로 실격돼 브래드버리는 1위에 랭크됩니다.

조 후보는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선 입지가 달랐습니다. ‘현직 프리미엄’과 문재인정부 초반 분위기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 후광을 안고 달렸죠. 4년 전 앞선 두 후보가 서로 물고 뜯다 나가떨어졌다면 이번엔 후발 주자들이 서로 발목을 잡아 낙승합니다. 박선영 후보와 조영달 후보 각각 36.15%와 17.26%로 중도·보수표를 갈라먹습니다. 조 후보는 46.58%였습니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결승에 오른 브래드버리는 한국 안현수(빅토르 안), 중국 라자준, 미국 오노, 캐나다 투르코 등 쟁쟁한 실력자들과 겨룹니다. 브래드버리는 여느 때처럼 느긋이 뒤따릅니다. 선두 그룹이 막판 스퍼트를 하자 브래드버리는 중계화면에서 사라집니다. 결승선 직전 코너에서 또 다시 일이 터집니다. 리자준이 넘어지며 오노를 건드리고 비틀대던 오노가 손으로 안현수를 넘어뜨리자 안현수는 투르코와 뒤엉킵니다. 도미노처럼 네 명이 나뒹구는 사이 브래드버리가 유유히 1위로 통과합니다.

지난 1일 제8회 지방선거 서울교육감 선거도 4년 전과 판박이였습니다. 이번에도 보수 후보들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승산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조전혁 박선영 조영달 세 후보는 단일화하지 못하고, 교육자로서의 품격은커녕 막말과 욕설로 뒤엉켜 23.49%, 23.10%, 6.63%로 나뒹굴었습니다. 조희연 후보는 38.10%로 유유히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레이스, 그 후

브래드버리는 남반구 국가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립니다. 호주는 영웅 대접을 합니다. 훈장을 주고 기념우표도 발행하죠. 호주에선 ‘브래드버리 하다’(do a Bradbury)란 신조어가 퍼집니다. ‘뜻밖의 행운으로 성공을 거두다’는 말로 세간에 회자되다 호주의 사전에도 등재됩니다. 그는 ‘라스트 맨 스탠딩’이란 자서전도 냅니다. 최후의 승자란 의미인데 경쟁자들이 빙판에서 나뒹굴고 있을 때 말 그대로 ‘마지막에 홀로 서 있었던 사람’이 그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절묘한 작명입니다.

조 교육감은 직선제 최초 첫 3선 서울교육감이란 타이틀을 ‘훈장’으로 달았습니다. 13일에는 전국 교육감들의 협의체인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다음 달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당연직 위원도 꿰찰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희연의 라스트 맨 스탠딩’이 브래드버리 스토리처럼 유쾌하지 않은 건 다수의 민의(民意)가 좌절됐다는 측면 때문일 겁니다. 서울 유권자의 과반은 3번 모두 조 교육감에게 자녀 교육을 맡기길 거부했습니다. 이제 그의 행운이 서울 학생 90만명의 불운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2014년 서울교육감 선거의 무효표는 10만540표, 서울시장 선거의 2.2배였습니다. 2018년에는 2.5배가 됩니다. 올해는 21만7449표로 무려 5.7배로 벌어졌습니다. 마땅히 찍을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일 겁니다. 늘 행운과 우연으로 승패가 갈리는 경기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유권자의 뜻과 거리가 있는 교육감 선거 제도, 이제 수술대에 오를 타이밍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