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등산 빼면 생활체육 빈곤… ‘함께’ 해야 사회가 건강

입력 2021-12-20 04:06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협업해 대한체육회 주관으로 2015년 12월부터 진행하는 ‘학교체육시설 개방사업’은 지역 생활체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체육관을 주민들에게 개방한다. 사진은 지역 주민들이 해당 사업으로 열린 체육관에서 탁구를 즐기는 모습. 대한체육회 제공

한국 사회에서 체육은 사치재다. 배드민턴을 제대로 즐기거나 배구 농구를 할 체육관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도심에선 높은 비용이, 교외에선 시설 자체가 없다. 실외스포츠도 다르지 않다.

체육은 공동체성을 강화한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급속도로 해체되는 한국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생활체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수치상 한국의 생활체육 참여도는 낮지 않다. 2019년 통계에서 국내 생활체육 참여도는 66.6%로 선진국 평균인 70%에 근접했다. 일주일에 1회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운동에 참여하는 비율이지만, 반전이 있다. 한국체대 스포츠산업학과 김미옥 교수는 “국내 통계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걷기와 등산이 포함된다. 이 둘을 빼면 실상 30~4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체육이 멀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작은 청소년기다.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 신상현 교수는 “우리 교육현장에선 운동을 왜 하는지, 체육을 왜 하는지 답을 주지 못한 상태에서 체육수업을 한다. 성인이 된 후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인이 돼서도 체육을 접하긴 어렵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격차가 뚜렷하다. 일본 문부과학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는 인구 1만5000명 당 1개꼴로 실내체육관이 있다. 국내에는 5만1000명 당 1개다. 일본에선 2만9000명 당 1개씩 수영장이 있지만 국내는 12만7000명 당 1개다.

최근 국내 통계에서 특이점은 스크린골프장과 헬스장 비중의 급증이다. 2010년 8186개였던 스크린골프장(골프연습장)이 2019년 9731개로 늘었다. 헬스장(체력단련시설)은 6240개에서 9469개로 40% 가까이 늘었다. 골프연습장과 헬스장의 비율은 전체 체육시설의 36.3%다. 25.9%였던 9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늘었다.

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SNS 문화와 관련 있다. SNS에는 골프 하는 모습이나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한 뒤 찍은 ‘바디 프로필’을 올려 자랑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체육 문화에서도 타인에게 과시하는 걸 우선하는 셈이다.

함께하는 체육문화를 위해선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골프연습장 헬스장 등 ‘돈이 되는’ 시설은 민간 투자가 많다. 탁구 배드민턴 농구 배구 등 비용 면에서 진입장벽이 적은 종목은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 초기자본도 유지비도 많이 든다”며 “공공이 적극적으로 기반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는 체육을 복지로 보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사회구성원이 큰 비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은 복지 면에서 일종의 사회기반시설(SOC)이다. 김 교수는 “선진국들은 스포츠를 적극적 사회복지의 영역으로 본다. 공공 부문에서 집중적인 투자로 기반을 확보해야 일정 수준 이상 발돋움할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체육의 순기능, 사회적 기여는 공동체의 회복이다. 우울증 등 사회적 질병이나 저출산·노령화 같은 문제가 공동체 해체와 관련됐다는 면에서 체육 저변 확보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 부문이 복지 차원에서 체육시설을 대대적으로 갖춘 사례로 꼽히는 건 1960년대 서독의 ‘골든 플랜’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시민의 삶을 복구하기 위해 15년간 약 12조원을 체육시설에 투자했고 독일은 20세기 후반 생활체육 강국으로 거듭났다. 시민 4분의 1이 체육단체 회원이고 전국 스포츠클럽만 9만개가 넘는다.

한국은 전후 경제개발에 집중하면서 때를 놓쳤다.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김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시화된 국가”라며 “새 체육시설을 건설할 부지를 찾는 것부터가 난제”라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가 협업하고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학교체육시설 개방지원사업’은 이런 여건에서 새로운 생활체육 기반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교 체육관을 생활체육의 거점으로 삼는 방법을 택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신 교수는 “한국의 공공영역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게 학교다. 한국에 딱 맞는 형태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에게 시설이용을 안내하는 현수막. 대한체육회 제공

최근 교육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통해 전국 학교에 지역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새로 짓겠다고 발표했다. 학교체육시설 개방지원사업이 탄력받을 여지가 생겼지만, 더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체육관을 새로 지을 때 문제는 최소한의 지침도 없다는 점이다. 마구잡이로 지으니 운영이 어렵다”며 “제대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디자인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사회와 협력을 초중고뿐 아니라 대학으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만한 방안이다. 신 교수는 “해외에선 대학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체육시설을 개방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며 “대학은 정부 부처 간 장벽에서도 자유롭고 독자적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자체와 협력도 강화하고 새로운 수익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