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통과의례, 회복 그리고 선거

입력 2021-11-19 04:08

인류학자 반 제넵은 ‘통과의례’라 이름 붙인 전통이 인간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통과의례란 결혼, 성인식, 장례, 세례, 할례 등 상징적 장치를 통해 개인의 지위 전환을 강하게 체험하게 함으로써, 새 지위에 걸맞은 역할과 규범에 적응하도록 돕는 종교적 의식을 말한다. 여기에 빅터 터너는 ‘리미널리티’ 개념을 덧붙였다. 리미널리티란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는 순간처럼 잠정적이면서 매우 영적인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터너는 이 개념을 통해 통과의례가 과거와 미래의 경계이고, 기존의 일상적인 행동과 규칙이 유예되는 시공간임을 강조한다. 이후 통과의례 논의는 개인이나 집단 차원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어쩌면 지난 2년간은 우리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의례에 부득불 참여해야 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를 ‘잠시 멈춤’의 기간으로 설정했고, 많은 것을 연기, 포기하거나 변경해야만 했다. 이제 그 고통스러운 시간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문지방을 넘는 이 순간을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회복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크다. 마스크 없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복’은 특정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질병 뒤 건강을 기원할 때, 전쟁 뒤 평화를 염원할 때 우리는 회복을 말한다. 이렇게 회복은 돌아갈 상태가 완벽에 가까워야 성립한다. 기독교 신학에서도 회복은 중요한 언어다.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 창조의 원 질서로 복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조화와 평안의 관계를 이룬 완전한 상태다. 그런데 우리가 회복할 일상은 어떤가? 코로나 이전 세상이 돌아가야 할 완벽의 상태라고 선언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해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를 기록 중인 자살률, 악화 일로인 불평등 지수, 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행복 지수 등 우리를 설명하던 수많은 표상의 암울함은 회복의 참뜻과 충돌한다. ‘회복’은 방역용어일 뿐 전환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

통과의례를 통해 급격한 전환의 충격을 줄일 뿐 아니라 성장과 도약의 계기로 승화시켰던 인간의 오랜 지혜를 빌리자. 통과의례는 그 문화의 핵심 가치와 원리를 재평가하는 기회다. 생각, 정체성, 행위의 통상적인 범위가 해체되는 혼동의 시간이지만 버릴 것과 되살릴 것의 경계가 확정되는 혁신의 시간이기도 하다. 통과의례를 거친 사람은 기존 사회로 복귀한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존재가 아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설 준비를 마친 새 존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과의례 아이디어는 팬데믹 이후의 전환이 반드시 정체성, 역할, 규칙, 지배 가치의 변화를 담아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인, 기업, 학교, 교회 그리고 온 사회가 새로운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지방을 넘으면서 우리는 회복할 일상과 그래서는 안 될 일상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새로 만들 일상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선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 구도는 거의 확정됐다. 이번 선거가 전환의 방향을 함께 상상하고 합의하는 기회였으면 좋겠다. 후보들이 회복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기준을 제안하고, 그 이유와 가치를 내놓고 경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훗날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에게 한 단계 성장과 도약을 가져다준 의미 있는 ‘통과의례’였다고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물론 후보들의 역량이나 현재 정치 상황, 역대 선거 경험 등을 생각하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