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모든 컬렉션 기증… 동네에 작은미술관 많이 생겼으면”

입력 2021-10-31 20:27 수정 2021-10-31 21:00
서도호 작가가 최근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부친 서세옥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곳 미술관에선 유족이 기증한 서세옥 컬렉션으로 첫 기획전 '화가의 사람, 사람들'전을 하고 있다. 손영옥 기자

지난해 11월 별세한 산정 서세옥(1929∼2020) 화백은 수묵의 현대화를 이끈 해방 후 1세대 작가다. 그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화가였다. 소나무 우거진 자리에 무송재(撫松齋)를 짓고 작업실도 갖춘 뒤 예술혼을 불태웠다. 60년 넘게 살아온 그곳에서 아이콘이 된 인간 시리즈도 탄생했다. 유족은 지난 5월 고인의 작품과 평생 모은 컬렉션 등 3300여점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했다.

한국 사회는 올여름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미술관 건립 장소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서세옥 컬렉션은 미술 수요자가 아니라 미술 생산자인 화가의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사후 활용 방안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유족을 대표하는 장남 서도호(59)씨를 최근 성북구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설치미술가인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선정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한다.

-작가의 컬렉션은 낯설다. 서세옥 컬렉션을 정의하자면.

“작가는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한다. 피카소 등 유명 화가들이 다 그랬다. 서세옥 기증품은 본인의 대형 작품만도 500점이 넘지만, 다른 작가로는 중국 명말청초의 동기창, 팔대산인에서 청말 상해화파인 조지겸 임이 오창석과 이들로부터 영향받은 제백석 등을 망라한다. 조선 후기 최북, 추사 김정희, 근대기의 김용진 변관식 손재형 김용준 등의 작품을 모았다. 중국 작가만 40여명, 한국 작가가 60여명이다. 그런데 이 모두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남종 문인화다. 문인화 정신이 수묵을 현대화하는 데 영감을 준 원천이다. 컬렉션을 보면 산정이 왜 한시를 쓰고 서예를 하고 전각(서화에 찍는 도장)을 한 이유를 알게 된다. 아버지는 생전 국립현대미술관에도 본인 작품 100여점을 기증했다.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만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것이다. 교유관계 등 주변 맥락을 봐야 작가 이해가 높아진다.”

김용진이 서세옥에게 결혼 선물로 그려준 장미 그림. 성북구립미술관

마침 성북구립미술관에선 서세옥 컬렉션으로 꾸민 첫 기획전 ‘화가의 사람, 사람들’전(12월 5일까지)을 한다. 추사 김정희, 오원 장승업 등 역사 속 스승도 있지만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서화가 김용진과 김용준, 한국화가 변관식, 서예가 손재형 등이 조카뻘, 아들뻘 되는 서세옥에게 가르침을 주며 선물로 준 그림들이다. 특히 역관 출신 컬렉터였던 김용진은 중국 상해파의 핵심인 오창석에게 직접 그림을 배웠기에 서세옥과 오창석을 잇는 가교다. 서세옥이 결혼할 때 김용진이 그려준 장미 그림에선 애정이 묻어난다.

-부친의 수집을 지켜본 기억이 있나.

“다니던 초등학교가 종로구 연건동에 있었다. 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서울대 미대도 당시엔 연건동에 있었다. 학교가 파하고 연구실에 놀러 가면 퇴근길에 저를 데리고 인사동에 들렀다. 화랑 주인들이 여러 작품을 보여주는데 아버지는 먼지 쌓인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용케 좋은 작품을 찾아내 싼값에 사셨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박봉을 털어 모은 것이다. 컬렉션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좋은 작품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세옥 컬렉션은 아주 빼어난데, 그의 안목이 있어 가능했다.”

-서도호 작가는 천으로 집을 짓는 설치 미술로 유명하다. 이 집 작업의 모티브가 1976년 완성된 한옥 무송재인 것으로 안다.

서세옥의 생전 터전이었던 한옥 무송재. 성북구립미술관

“당시 세운상가 아파트가 생겨나고 할 때인데, 일부러 한옥을 지으셨다. 1960년 경복궁 향원정을 수리한 배희한 대목장을 수소문해 지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나갔는데 중학교 때 완성돼 들어왔으니 5년이나 걸렸다. 무송재는 소나무를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수십 그루 소나무가 있는 이 집에서 정원을 가꾸시며 소나무 등걸을 어루만지는 게 아버지의 낙이셨다. 아버지는 성북동에 오셔서 문인화가의 삶을 추구하신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경우 정부가 별도 미술관을 짓는다. 서세옥 기증품이 어떻게 활용됐으면 하는가.

“아버지는 화실이 있던 한옥 옆에 작더라도 ‘서세옥 미술관’을 짓는 게 소원이었다. 짓게 되면 아주 작은 미술관이 될 것이다. 생전 지내던 한옥과 화실도 나중에는 어떤 형태로든 개방될 것이다. 그러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작품의 탄생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케이스는 국내에 전무하다.”

서도호 작가는 한국의 미술관 정책과 미술관 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길게 토로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미술관이 아니라 작은 미술관이다. 건물만 번듯하게 짓고 콘텐츠가 없어 운영이 안 되는 사례가 외국에도 적지 않다. 일본만 해도 1980년대 버블 경제 때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지은 큰 미술관을 활용하지 못해 초등학교 미술작품 전시장으로 전락한 케이스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네마다 작은 미술관이 보석처럼 콕콕 박혀 있어야 성숙한 사회다. 성북동이 그렇게 보석이 박힐 수 있는 지역적 인프라를 갖춘 곳”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변관식이 직접 그려준 부채 그림. 성북구립미술관

“화가로는 장승업 김환기 변관식, 조각가로는 최만린 권진규, 컬렉터로는 김용진 전형필, 이론가로는 최순우 등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사의 중요 인물들이 성북구에 둥지를 틀었다.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조각가 최만린의 자택, 권진규 아틀리에가 유족의 기증으로 시민에 개방된 선례가 있다.”

미국 예일대에서 석사를 하기 전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한 서도호는 “아버지는 내겐 스승이자 선배였다. 작품을 정리하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 선배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동시에 느꼈다”면서 “성북초등학교 아이들이 미술관에 놀러와 기증품인 추사 김정희의 작품도 보고 작업실도 구경하며 서세옥의 체취를 느끼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