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약해지는 도시와 그 안에 숨겨진 욕망이 화폭에… 구지윤 개인전 ‘혀와 손톱’

입력 2021-08-22 21:45
구지윤, ‘혀와 손톱’, 2021년, 면에 유채, 290.9×218.2㎝.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추상회화 작업을 통해 현대 도시의 심리적 풍경을 그리는 구지윤(39) 작가의 개인전 ‘혀와 손톱’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성장한 작가에게 도시는 건축물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는 속도와 욕망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공사장 현장을 구체적인 묘사가 아니라 과감한 붓질과 쌓았다 뭉개는 화면이 주는 속도감으로 표현하는 공사장 추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작가는 최근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나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단지들은 신축 당시에는 군단처럼 위풍당당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낡고 색이 바라 곧 죽을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처연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전 작업에 비해 시간성이 묻어나는 게 신작들의 특징이다. 늙고 병약해지는 도시의 이미지는 한층 탁해진 색상에서 묻어난다.

전시 제목인 ‘혀와 손톱’은 도시에 대해 작가가 느끼는 두 인상을 함축한다. 손톱은 끊임없이 자라나지만 새 손톱을 위해 잘려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결국엔 부서져가는 도시 속 건물과 닮아 있다. 반면 손톱이 주는 딱딱하고 건조한 이미지의 대척점에 있는 혀는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성질, 입 안에 숨겨져 있는 특성으로 인해 도시에 몸을 숨기고 있는 욕망을 상징한다.

욕망 속에서 태어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쇠락해가는 도시가 주는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날카롭고 거친 선과 두텁고 부드러운 선이 혼재하는 붓질, 탁한 색과 밝은 색이 뒤엉킨 색상 등 대비되는 요소들을 한 화면에 공존시킨다. 그 생경함이 독특한 묘미를 만들어낸다. 9월 25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