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18년 만에 나온 알츠하이머 신약… 절반만 성공한 ‘게임체인저’

입력 2021-06-29 04:05
3상 시험 2개 중 1개는
인지저하 막는 임상 목표 미달
투약 땐 베타 아밀로이드 줄어
제2주범 타우단백질 정복도 숙제
경도인지장애 단계부터 사용
중증 환자엔 약효 기대못해

얼마 전 미국에서 중증의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50대 남편이 결혼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자신의 아내에게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한 사연이 알려져 전 세계인들에게 안타까움과 감동을 전해줬다. 3년 전 '초로기 치매'로 불리는 조발성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받은 남편은 TV속 결혼식 장면을 보고 간병인으로 알고 있던 아내에게 "우리 결혼하자"고 깜짝 청혼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알츠하이머병의 주된 증상은 '기억력 감퇴'다.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래된 일은 기억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냄비를 올려놓고 금방 잊어 집에 불이 날 뻔하거나 집 출입문 비밀번호를 잊어 외출했다가 집에 못 들어가는 등 일상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치매의 75%가 알츠하이머병


28일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유병자는 84만여명(유병률 10.33%)으로 추산된다.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넓히면 86만명(7.23%)에 달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70~75%를 차지한다. 2019년의 경우 65세 이상 전체 치매의 74.9%(79만명 중 59만명)가 알츠하이머에 의한 것이었다.

가장 큰 위험인자가 ‘연령’이기 때문에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유병 인구가 늘 것은 뻔하다. 게다가 앞서 미국 남성처럼 60세 미만 조발성 치매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 의하면 당시 40세 미만 치매 진료 환자는 1151명(연평균 4% 증가), 40~59세는 3만5608명(연평균 15%)으로 집계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지원 교수는 “다만 실제 이른 나이에 발병이 늘고 있는지, 조발성 치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병원 방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인지는 다각도에서 분석과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조발성 치매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이 40~50% 정도를 차지해 65세 이상 연령대보다는 비율이 낮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그간 질환의 원인에 직접 작용하는 치료약이 없었기 때문에 인지 기능(기억력, 판단력 등) 저하와 정신행동(우울, 불안, 불면 등)을 완화해 주는 대증 치료가 전부였다. 해당 치료제들은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있는 신경전달물질들에 작용해 증상을 개선해 줄 뿐, 근본 원인을 치료 혹은 조절해 치매 진행을 막거나 늦추지는 못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대뇌피질(신경세포 밀집구역)에 독성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대개 무증상(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시작하지만 기억력 저하는 나타나지 않음)→경도인지장애(뇌세포 소실이 시작돼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지만 독립적 일상생활 가능)→치매(뇌세포 소실이 상당히 진행돼 기억력·인지 기능이 뚜렷이 저하되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짐) 단계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 뇌세포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의 ‘타우 단백질’ 변형도 관여하는 것으로 연구결과 확인되고 있다. 즉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의 근원(根源)인 셈이다. 뇌세포가 죽으면서 뇌 크기는 점차 줄어드는데, 병이 말기까지 진행되면 뇌 크기가 정상인의 70%까지 쪼그라든다.

근본 원인 치료제 나왔지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베타 아밀로이드를 타깃으로 한 치료제(아두카누맙)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조건부 사용 승인을 받아 전 세계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소식을 전했다. 2003년 이후 18년 만에 등장한 치매 신약이지만 곧이어 사용에 따른 ‘임상적 이득’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제기돼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아두카누맙은 베타 아밀로이드 응집체(플라크)에 선택적으로 붙어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다. 문제는 2개의 3상 임상시험 중 한 개에서는 해당 약제가 임상적 악화(인지 및 일상생활 기능 저하)를 감소시켜 목표를 충족했으나 다른 임상시험에서는 그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만 임상시험 모두에서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응집체가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한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병태 생리상 뇌 속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상당히 감소시킨 것은 사실이어서 그로 인한 임상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기에 미 FDA가 긴급 승인 기준에 맞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고대하던 알츠하이머병 신약의 등장이 고무적인 일임은 틀림없으나 약물 효과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추가로 확보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교수는 “이번 신약은 알츠하이머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MCI)’에서부터 쓸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 그리고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도 쌓인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의 20~25%가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는 “최근엔 뇌 속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 여부를 알수 있는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검사도 시행되고 있어 경도인지장애처럼 향후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뇌 안에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시작하는 사람을 미리 찾아내 치료제를 투여하면 알츠하이머병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학계에선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게임 체인저(획기적 치료제)’가 등장한 것은 맞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설희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안에는 베타 아밀로이드 외에 신경세포를 죽이는 타우 단백질도 있기 때문에 이것까지 제거하는 약물이 나와야 완전한 알츠하이머 치매 정복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많이 진행된 중증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점도 신약의 한계다. 또 투여 후 영상검사에서 뇌부종과 미세출혈 등 일부 부작용이 확인돼 일정 기간마다 뇌MRI 촬영이 따라줘야 하고 만만찮은 약값(연간 약 6000만원)도 해결과제다. 한설희 교수는 “머지않아 국내에서 이 신약을 쓰게 되더라도 치료 대상 선정, 안전성 모니터링, 치료 비용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료와 함께 예방 노력도 중요하다. 한지원 교수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위험 인자 관리와 규칙적 운동, 독서 등 인지 활동, 적극적 사회활동을 통해 평소 ‘인지 예비능’을 키워놔야 베타 아밀로이드가 생겨도 인지 기능 저하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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