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패션이다] 작아서 가까워진 객석… 진행자·가수·관객 모두 주인공

입력 2021-05-15 04:06
예능 공화국이 있다면 헌법 제1조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아닐까. 지루한 건 못 참는 게 예능의 불문율이다. “1절만 해.” 이건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에게 면박을 줄 때 쓰는 말이다. 화자는 장황함을 자상함으로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1차 경고에도 못 받아들일 땐 더 공격적인 말이 나온다. “제목만 말해” 냉정한 것 같지만 효율적이다. 방송사 입사시험에 국어가 들어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사람이 핵심을 짚을 줄 아는가, 요약해서 말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보는 것이다.

가수 노영심(왼쪽)과 이문세가 1991년 12월 25일 KBS에서 방영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성탄특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문세는 1995년부터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이어 ‘이문세쇼’를 진행했다. KBS 제공

초등학교 때 좋아한 과목이 직업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학창시절 내가 좋아한 과목은 국어와 음악이었다. 그 시간을 기다렸고 그 시간엔 펄펄 날았다. 성적이 좋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성적을 뒤집어야 적성이 보인다는 건 참고할 만한 자료다. 국어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짧은 글짓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과정을 소홀히 넘기면 지루한 사람으로 굳어지기에 십상이다. 언어영역에만 해당하는 규범이 아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듀이 왓슨이 쓴 책 제목이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다. 자고로 문체 중 으뜸은 간결체다.

오늘의 핵심어는 음악회다. 세 글자에 농축돼 있다. 소리(音)가 즐거워(樂) 모인다(會). 세상에 소음이 얼마나 많은가. 즐거운 소리여야 음악이 된다. 음악은 그것이 즐거운 사람끼리 만나게 한다. 물론 내게 즐거운 소리가 누구에게 괴로운 소리일 수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타인의 취향을 삼류로 취급하는 건 자유지만 그건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대놓고 무시하는 건 그 자체가 삼류행위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프로그램 타이틀. KBS 제공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1992-1994)다. 아홉 글자에 프로그램의 성격이 다 들어있다. 노영심이라는 작곡가 겸 가수가 음악회를 진행하는데 규모가 크지 않다는 거다. 규모는 작아도 영향은 컸다. 지금도 방송 중인 (KBS2)인 ‘유희열의 스케치북’(2009-현재) 원조가 바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다. 그 사이에 이문세쇼(1995-1996), 이소라의 프러포즈(1996-2002),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2008),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2009)가 있었다.

TV음악회는 누가 노래하고 연주하느냐 못지않게 누가 이끌고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진행자의 퍼스낼리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퍼스낼리티란 고유한 특성을 말하는데 개성과 인성을 아우른다. 모두가 좋아할 순 없지만 다수가 싫어하면 곤란하다. 노영심에서 유희열에 이르는 진행자계보를 살펴보면 시대정신은 아니더라도 시대 정서는 대략 유추할 수 있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30여년 동안 방송사 사장 열 명이 바뀌어도 ‘배철수의 음악캠프’(1990-현재)는 오늘 저녁에도 방송된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색깔이 분명하다는 거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써주는 그대로 낭독하는 경우는 드물다. 쉼표나 느낌표도 자기가 찍는다. 부르고 싶은 사람을 무대에 불러내 그들이 기량을 발휘하도록 안내한다. 제작진과 의견이 다르면 한두 번은 양보한다. 계속 마찰이 생기면?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나가버린다. 그들은 생활형일지언정 생계형은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속담에서 포도청은 포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주장이 심한 건 아니지만 주관이 뚜렷하므로 존중이 필수다.

이런 사람들과 오래 일하려면 어떤 PD가 돼야 할까. 일단 안목이 좋아야 한다. 듣는 귀도 있어야 한다. 감 놔라 배 놔라 스타일은 안 어울린다. 감이 좋을까 배가 좋을까보다는 무슨 과일이 좋을까 의논하는 유형이 적합하다. ‘자존심 상해서 못 해 먹겠네’ 그러면 애당초 잘못된 만남이다. 제작진은 진행자와 출연자를 아껴야 한다. 지배(dominate)보다는 재배(cultivate)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모자란 PD는 진행자와 출연자를 이기려 한다. 잘 생각해보자. 이겨서 얻는 게 뭔가. 폼 잡으려고 방송사 들어왔다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임(스타)도 보고 뽕(성과)도 따려면 실학사상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예능의 공리주의다.

‘작은 음악회’는 작아서 성공했다. 우선 무대와 객석이 가까웠다. 이 프로를 처음 연출한 박해선은 PD이자 시인이다. 그는 규모의 경제를 안다. 무엇보다 짧게 말할 줄 안다. 첫 녹화를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했다. 패티김이 노래하기엔 좁은 무대다. 불멸의 가객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한 그곳이 바로 작은 음악회의 산실이었다.

당시 노영심은 변진섭이 부른 ‘희망사항’이라는 노래의 작사·작곡자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였다. 변진섭은 1990년 MBC가수왕이었고 ‘희망사항’은 그해 최대히트곡으로 뽑혔다. 전국적으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가사와는 달리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는 아니었다. 노영심은 프로그램의 구성에서만큼은 단호했고 창의적이었다. 자의식도 강했다. 더이상 보여줄 게 없을 땐 쥐어짜는 게 보통인데 노영심은 달랐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고 그 프로의 포맷은 색깔이 다른 진행자들로 계속 이어졌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포스터. KBS 제공

이문세부터 유희열까지는 퍼스낼리티 뒤에 붙은 용어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문세는 이름 뒤에 ‘쇼’가 붙었다.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그는 노래뿐 아니라 재치와 순발력도 달인이다. 재미가 뭔지 알고 무대에서 구현하는 사람이다. 뮤직토크에 최적화한 인물이다. 이소라 뒤에는 ‘프러포즈’가 붙었다. 그래선지 연인들이 사랑을 인증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 가려면 일단 용기를 내야 한다. 신청하는 게 청혼과 비슷할 정도라면 과장일까. ‘말할 거예요 이제 우리 결혼해요’(이소라 ‘청혼’ 중) 방청권을 따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일 땐 제작진의 공정 공평이 필수다. 콜럼버스가 발견을 하고 에디슨이 발명을 한다면 PD는 발탁하고 채택한다. 출연자의 노래만큼 방청객의 사연도 심금을 울려야 한다. 작은 음악회는 카메라로 이따금 비추는 정도를 넘어 객석을 아예 무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동원된 방청객은 기계처럼 움직이지만 초대된 방청객은 인간적으로 반응한다. 주인처럼 일하면 주인이 되고 노예처럼 일하면 노예가 된다는 말은 객석에도 적용된다. 친구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관람하니 음악회는 매회 훈훈하고 정다웠다.

가수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며 PD는 누구를 위해 방송하는가. 윤도현은 ‘가을우체국 앞에서’ 러브레터를 띄우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임했다. 청년의 기백과 순수한 열의로 무대와 객석을 접속시켰다. 윤도현이 떠난 자리엔 식물의 향기가 드라이아이스처럼 깔렸다. 페퍼민트는 원래 여러해살이풀이지만 무대에선 오래 피지 못했다. 배우 이하나의 진행은 깔끔했지만 드라이플라워로 음악의 향기를 전하기엔 다소 미흡했다. 배턴을 이어받은 유희열은 13년째 무대에서 그리움을 그리는 중이다. 그는 한밤의 화가다. 자정이 넘은 시각부터 불면의 시청자를 모으기 시작해 새벽잠을 훔친다.

노영심부터 유희열까지 작은 음악회의 음악 감독은 단 한 사람. 불후의 명곡 ‘서른 즈음에’의 작사·작곡자인 강승원이다. 그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마지막 회(1994)에서 직접 불렀는데 김광석이 음악에 꽂혔고 강승원이 선물처럼 노래를 줬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코로나는 음악회의 풍경도 바꿔서 이제 관객이 가수 앞에 앉아있지 않고 화면 속에 갇혀(?) 있다.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스케치북은 왠지 한쪽이 허전하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