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폐교서 시작하는 소설가의 후반생

입력 2021-05-06 19:39
지난 1일 소설가 김탁환이 전남 곡성군 곡성읍 한 폐교 2층에 새로 마련한 집필실에서 새로 쓰기 시작한 소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곡성(전남)=이한결 기자

김탁환(53)은 전남 곡성의 섬진강변에서 소설가의 후반생을 시작했다. 올해 초 곡성읍 한 폐교 2층에 작업실을 꾸미고 대하소설을 쓰고 있다. 등장인물이 100명 정도 나오는, 5000매 이상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에게는 ‘불멸의 이순신’(8000매) ‘압록강’(7000매)에 이어 세 번째 대하소설이다.

지난 1일 작업실에서 만난 김탁환은 “육십이 넘으면 대하소설을 쓰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웃으며 “오십 대에 큰 소설 하나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탁환은 지금까지 장편소설 30편을 썼다. 서른 살에 쓴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부터 지난 3월 출간한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까지 그야말로 쉼 없이 썼다.

새로 쓰는 소설은 그의 서른한 번째 장편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김탁환이 소설가로서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며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소설에 매진하기 위해 2009년 카이스트 교수직을 버린 그는 이번에 서울 생활도 버렸다. 지난 20여년간 도시에서 소설가 생활을 그는 “도서관에서 소설 쓰기”라고 설명했다.

“도서관에서 책과 자료들을 읽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어오는 삶이었다. 그렇게 소설을 써온 작가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선배들을 보니까 자꾸 관념들만 커지고 나중엔 관념덩어리가 되고 말더라.”

그는 “이렇게 살다가 죽긴 싫었다”는 말도 했다. “카이스트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뒤 10년간 여기저기 원룸을 구해 작업실로 써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골방에 틀어박혀 이야기를 쓰고 쓰고 또 쓰다가 늙고 병들어 죽고 싶진 않았다.”

2018년 3월 농업회사를 운영하는 이동현 대표와 만난 것을 계기로 김탁환은 소설가로서 후반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확정한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미생물학자로 2006년부터 곡성의 폐교에서 발아현미 연구소, 곡물 가공 공장, 채식 식당, 카페를 겸한 공간을 운영해온 이 대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과 농업을 지키려는 신념으로 가득 찬, 김탁환의 말로는 “무모한 본질주의자”였다.

김탁환은 그런 사람들에게 끌렸다. 김관홍(세월호 잠수사, 소설 ‘거짓말이다’의 실제 모델)이 그랬고, 달문(조선 영조 시대의 걸인이자 예인,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이 그랬고, 백탑파(조선시대 실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백탑파’ 시리즈는 김탁환의 대표작이다)가 그랬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김탁환은 이 대표를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농사와 지방에 대해 배웠다. 그러면서 소설가로서 후반생을 정립할 수 있었다. 김탁환은 이 대표와 1년간 교류한 시간을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란 책으로 썼다. 작년에 출간된 이 에세이집은 김탁환의 소설적 전환에 대한 보고서이자 소설가로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 선언문으로 읽힌다.

50대 중반에 서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정도에서 평온한 길로 들어설까, 흔들리던 김탁환은 “고개를 내려가는 대신 다시 능선을 타보기로 했다.” 그는 “큰 작가나 유명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은 어느새 사라졌다”면서 “대신 마을소설가로 살겠다”고 자신이 도달한 결론을 전했다.

역사소설가, 사회파 소설가를 거쳐 마을소설가로 새로 시작하는 김탁환은 주중엔 곡성에서 소설을 쓰고 주말엔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지낸다. 곡성에선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 농사일을 한다. 전날에도 이동현 대표의 농업회사 직원들과 함께 파종을 했다. 주민들과 함께 글쓰기 교실도 한다. 이달부터 농부 이동현, 소설가 김탁환, 소리꾼 최용석이 강사로 나서는 생태교육 프로그램도 시작한다.

집필실 주변 논밭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김탁환은 오전엔 글을 쓰고 오후엔 농사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곡성(전남)=이한결 기자

김탁환은 지방에서, 마을에 속해, 농사일을 하면서, 쓴다. 그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얘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편작가라는 정체성이 확실하다. “장편에는 특별한 품격이 있다. 인생의 질문을 다뤄야 하고, 시간에 맞서 견딜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소설가들은 내면과 외면을 모두 써야 한다”면서 “소설가들이 현실 세계의 리얼함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다들 내면 풍경에만 경도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얘기했다.

마을소설가라는 말에는 “관념적인 소설가로 가지 않겠다는 경계의 의미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작가가 나이 들면 스승 노릇 많이 한다. 그런 선배들 많이 본다. 보기에 좋지 않더라. 그런 게 예술도 아니고. 이렇게 살면 내가 최소한 날아다니지는 않겠구나, 그런 안심이 든다.”

지방, 마을, 농사는 소멸 직전의 단어들이다. 김탁환은 그 곁에서 그것들을 지키는 데 개입하기로 했다. 그는 “이념이나 영웅에 대한 이야기보다 착한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면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질문을 던져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로 올라가는 1층 문 앞에는 ‘달문의 마음’이라는 명판이 걸려 있다. 김탁환에 따르면 달문은 “한없이 좋은 사람” “손해를 보면서도 평생 착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달문은 평생 책 한 권 안 읽은 사람”이라며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얘기했다.

김탁환은 늘 착한 사람들에게 매료된다. 그들의 선한 의지와 눈물겨운 분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김탁환은 세월호 아이들을 구조한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을 보았고, 농업과 농촌에 인생을 건 이동현 대표가 내뱉는 한숨 소리를 들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농업과 마을, 환경이 소멸해 가는 풍경도 만났다.

그러면서 김탁환의 소설은 다시 확고해졌다.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고 싶다’며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아름답지만 홀로 쓸쓸하게 소멸해 가는 것들 옆에서 함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어 한다.

김탁환의 작업실이 자리한 폐교 공간을 운영하는 농업회사 이름은 미실란(美實蘭)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 김탁환은 이 이름에 처음부터 끌렸다. 아름다울 미(美)를 열매 실(實)에 붙인 것, ‘미’와 ‘실’을 함께 생각하는 것, 그게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탁환은 하루 몇 페이지를 썼는지 책상 달력에 적어놓는다. 3월 1일 11(시작), 2일 11(22),… 10일 41(160),… 29일 39(594),… 31일 13(630) 이런 식이다. 그는 지난 3월 630페이지를 썼다. 하루에 11∼51매를 썼고, 안 쓴 날은 6일(토), 14(일), 15(월), 21일(일) 나흘뿐이었다.

곡성=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