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오래전에 잡아둔 강연 때문이었다. 진행자와 몇 가지 의견을 주고받고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나는 습관처럼 그날 도서관에서 뵙자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진행자께서 절대 도서관으로 오면 안 된다고 했다. 이번 강연은 안전을 위해 화상채팅으로만 진행될 예정이기에 나에게 화상채팅으로 접속해 달라고 했다. 직접 도서관으로 가서 강연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렵고 복잡할 것 같았던 화상채팅 강연은 의외로 쉽고 편리했다. 우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연장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됐고, 카메라가 상체만 비추기에 하의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됐다. 또한 강연이 끝난 뒤 손가락 하나로 노트북 전원만 끄면 돼서 편리했다. 이런 강연이라면 하루에 10번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독자분들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긴 했다.
화상채팅을 이용해 친구들과 신년회도 가졌다. 각자의 집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 등을 준비해 카메라 앞으로 모였다. 잠옷을 입은 친구도 있었고, 젖은 머리를 말리지 않은 친구도 있었고, 반려견의 밥을 챙겨주면서 카메라 앞에 나타난 친구도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에 앉아서 새해의 덕담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편리해서 좋았다. 몇 시간의 수다 끝에 화상채팅을 종료하고는 바로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처음엔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우울감도 찾아왔지만 금세 이런 생활에 적응했다. 인간은 늘 무서운 속도로 적응한다. 도저히 감당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상황도 몇 번의 반복 끝에 언제 불편했냐는 듯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이번 감염병은 싫다. 금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믿어본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만날 땐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애틋해진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그때 마음껏 껴안아 줄 거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