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재난이 켠 경고등, 약자가 더 아팠다

입력 2020-12-25 00:01

2020년 한국사회는 재난의 현장이었다. 낯선 바이러스 코로나19는 일상과 터전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전염병 확산과 경기침체의 이중고로 사회적 약자의 삶은 처참하고 처절했으며 또 치열했다. 사회안전망 작동이 멈추면서 긴급한 도움이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했고, 참다가 목숨을 잃는 사회적 죽음들이 생겨났다. 노동 가치는 침전했고, 밑바닥 노동의 경쟁은 더 맹렬해졌다.

코로나19는 잊힌 사람들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노인 및 정신 요양시설 등에서 발생한 집단감염과 사망은 대규모 장기수용 방식의 저렴한 돌봄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수도권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악화하고 있는 자살 관련 데이터는 일자리 및 주거 취약계층으로 내몰린 ‘을’들의 절규를 대신했다. 전염병 대응이 국가적 관심이 되면서 눈과 귀가 닫힌 ‘데프블라인드(Deaf-Blind)’, 스스로를 가둔 은둔형 외톨이 등 소외계층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 와중에 양극화는 통렬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몰고 온 정책 실기 등은 자산 격차를 키웠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 등으로 사회 갈등은 커지고 있는데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극단의 광장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령이 들어설 자리를 빼앗았다.

국민일보 이슈&탐사 1, 2팀은 올해 한국사회가 겪었던 처음의 것들을 쫓아가 그 일을 일으킨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봤다. 총 26건 105회 탐사보도물에 코로나19 고통을 맨몸으로 받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코로나 시대가 바꿔놓은 사회적 층위와 미래상도 분석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갈등을 부추기는 플랫폼 알고리즘의 실태 등도 주요 취재 대상이었다.

약자에 대한 대우가 사회의 품격

“애들이 있는 집은 돈을 줄일 수가 없잖아요.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 했어요.”

코로나19가 일으킨 경기침체 파동은 기어코 밑바닥 노동자의 삶을 할퀴었다. 자영업이 쓰러졌고, 그곳의 일감 노동자 삶도 무너졌다. 몸이 아픈 남편 대신 인력사무소에 나가 식당일로 생활비를 벌던 신복현(가명·61)씨는 몇 달째 수입 제로(0원) 상태였다. 동년배 실직 여성 장미영(가명·61)씨 통장 잔액은 0원이었고, 우울증 치료비 1만6300원만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코로나19가 던진 비명의 사슬’ 시리즈, 3월 4회 보도).

보도 후 그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져 관련 단체를 연결해 줬다. 지난가을 근황을 물으려 연락했는데, 신씨는 자신보다 긴급한 사람에게 전달하라며 도움을 양보했다는 말을 덤덤히 전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수준은 국가 품격을 가늠하는 지표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가 이를 자문(自問)하게 했다. 지난 3월 왼팔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지체장애인이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 홀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사연 등을 마주했다. 정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에는 이런 약자에 대한 고민이 담기지 않았다. 과거에도 국가적 재난이 터진 뒤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금방 잊혀졌다(‘약자에 더 가혹한 재난’ 시리즈, 3월 5회 보도).


계절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코로나 반년 동안 ‘예외 없는 원격수업’ 정책 등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중학생 딸, 자폐성 장애가 있는 고3 아들의 퇴행을 지켜봐야만 했다는 엄마들의 사연을 접했다.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우울증 치료차 받아온 자신의 수면제를 몰래 먹였다는 엄마의 절규도 있었다. 배려 없는 비대면 정책은 중증·중복발달장애인의 재활 활동까지 멈춰 세워 아들의 상태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시신이 부패할 정도로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의 급증 역시 돌봄이 사라진 시대의 비극을 드러낸다. 모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재난 대책에 녹아들지 않은 탓이다(‘코로나 블루 또 다른 재난’ 시리즈, 9~10월 7회 보도).

지난 3월 대구에 사는 이모(53)씨가 어머니(80) 시신을 본 건 딱 3초간이었다. 배가 아프다던 어머니는 죽을 받아먹다가 쓰러졌고, 사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선 감염이 우려된다며 친딸에게도 시신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유리창 너머로 본 비닐백 속 어머니를 못 잊을 것 같다고 했다. 매일 쏟아지는 누적 사망자 숫자는 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눈물을 담지 못한다(‘치명률 1.2%에 가려진 비극’ 시리즈, 3월 3회 보도).

소외계층이 외면됐다

전염병 재난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냈다. 대규모 집단 수용 시설을 통한 돌봄의 문제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라는 슬픈 통계로 그 실상을 알렸다. 첫 사망자는 평생을 정신시설에서만 지냈던 청도 대남병원 환자였다. 동료 환자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다. ‘정신질환자 장기수용 실태 추적기’(5월 8회 보도)는 그들처럼 장기수용된 정신질환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실태를 고발한 탐사보도다. 꽃다운 나이 17살에 정신시설로 들어온 순이씨(가명·51)는 34년을 시설에서만 지냈다. 한때 수용자는 600명 가까이 됐었고, 지금도 200명 넘게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 취재 과정에서 장기수용 상태의 정신질환자 수가 최소 1만5000여명으로 기존 통계의 60배에 달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가족에게만 책임을 떠넘긴 채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구조 탓이다.

국가의 관심에서 멀어진 소외계층과 집단은 많았다. 지난봄 평생 특수학교 교사로 살아온 이영미 한국경진학교 교감은 취재팀이 보여준 사진 한 장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진 속 인물은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이관주(51)씨. 이 교감은 20여년 전 20대의 관주씨에게 손가락 글씨로 공부를 가르쳤다. 관주씨는 1994년 중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한국의 헬렌 켈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 교감의 개인 사정 등으로 인연이 끊기면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관주씨는 지금 시각중복장애인 시설인 경기도 여주 라파엘의 집에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6월 8회 보도)는 관주씨처럼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관한 보도였다. 사각지대에 있던 데프블라인드 장애인의 실태를 전했다. 이들은 의사소통과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애에 맞는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세상과 단절한 채 은둔한 청년들도 늘고 있다. 대부분 가정해체나 여러 종류의 폭력 트라우마가 원인이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같은 청년이 국내에도 13만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둔은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지만 아직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고, 관련 정책도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방에 나를 가뒀다, 은둔 청년 보고서’ 시리즈, 12월 6회 보도).

양극화, 빈곤노동, 분열

3년 전 주택임대사업제도를 활성화해 집값을 잡겠다고 했던 여권이 최근 ‘1가구 1주택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주택임대사업은 다주택자의 보유물량을 재료로 한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제도는 부동산 대책 실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민간주택임대사업 등록 인센티브’ 제도는 집값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임대사업자에 너무 과도한 혜택이 주어져 정부 정책이 다주택자의 추가 매집 수단으로 변질했고, 과세 형평성까지 무너뜨렸다는 점이 데이터로 증명됐다. 보도 이후 임대사업자 관련 인센티브 대책은 수정됐다. 그러나 다주택자를 무조건 투기꾼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다(‘정부가 깔아준 다주택 꽃길’ 시리즈, 6월 4회 보도).

임대주택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율 5% 제한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전세 제도의 미래’ ‘공공임대 정책 탐구’ 시리즈도 연이어 보도했다. 공공임대아파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지난 8월 동부산대에서는 폐교를 앞둔 교직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 대학은 8월 31일 문을 닫았고 교직원들은 실업자가 됐다. 인구감소 시대, 위기의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시리즈, 9월 5회 보도).

노동 현장은 빈곤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증가한 쓰레기는 고령 여성 위주의 선별 노동 현장을 더 열악하고 가난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빈곤한 자원 순환 구조의 역설이다(‘값싼 쓰레기 정책의 역습’ 시리즈, 5회 보도). 인공지능(AI)을 위한 단순 작업이 일자리가 되는 등 노동이 일감으로 쪼개지고 파편화돼 가치가 하락하는 일도 늘고 있다(‘데이터 노동의 등장’ 시리즈, 10월 5회 보도).

전웅빈 권기석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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