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살다 보니 이렇게 됐고 필요한 일이니 그냥 하는 거죠.”
경남 양산의 사무실에서 지난 15일 만난 에이알티에스 대표 정두석(60) 부산 반디제자교회 장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2004년 문을 연 에이알티에스는 비닐하우스 등에 쓰이는 농업용 필름을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다. 그는 이 회사를 창업하기 전인 1996년 해외 아동 정기후원으로 나눔을 시작해 현재까지 1억4000여만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20여년간 지속해온 나눔은 그의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래였다.
정 장로가 나눔을 시작한 건 대학생 때부터다. 40여년 전 성탄절에 교회 청년회와 결연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간 그는 일회성 만남에 상처받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후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도 보육원에서 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았다.
그는 “처음 시간을 보낸 후 아이들에게 또 오겠다고 인사를 했더니 한 아이가 ‘다들 그러던데’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아 우리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이라며 “다시 상처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몇 년을 꾸준히 보육원에 가서 관계를 맺다 보니 나눔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후원을 시작한 후 정 장로는 여건이 될 때마다 후원 아동을 늘려갔다. 그렇게 매달 15명의 아이가 그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식수위생과 교육지원 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때그때 현지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줬다.
2012년 후원 아동이 있는 아프리카 가나를 방문했을 때는 컴퓨터가 없어 인터넷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지 학교를 보고 컴퓨터 20대를 후원했다. 올해 1월 아프리카 우간다에 갔을 땐 독사에 발을 물려 마비가 온 후원 아동이 대형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비용을 모두 지원했다. 개인적인 지원과 별개로 회사 수익의 일부도 매년 식수위생 사업에 후원한다.
묵묵히 도움을 건네는 정 장로의 모습은 선한 영향력이 돼 주변으로 퍼졌다. 회사 식당에는 정 장로 외에 에이알티에스 직원들이 후원하는 아이들 23명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었다. 전체 직원 50명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정 장로는 “회사 이름으로도 후원하니 사내에서 종종 얘기를 나누고 현지에 다녀와서 사진도 보여줬더니 직원들이 감동해 자발적으로 후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3명이 돈을 모아 한 사람을 후원하는 등 각자 형편에 맞게 동참한다”고 설명했다.
식당엔 회사 이름으로 식수위생 사업을 지원한 지역이 표시된 세계지도와 안마의자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있는 국내 지도가 함께 걸려있었다. 국내 지도 위엔 ‘지역 나눔’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회사는 해마다 농촌의 노인회관에 안마의자를 10~15대씩 선물하고 있다. 회사가 판매하는 농업용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농부들이다 보니 이들을 도울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양산시와 협력해 복지원 등에 필요한 물품도 지원한다.
정 장로는 가족과 직원들이 후원한 해외 현지를 방문할 기회도 마련했다. 2012년 가나엔 첫째 딸, 올해 우간다엔 막내딸과 함께 갔다. 직원들과 동행한 때도 많았다. 2년 전에는 정 장로는 가지 않고 직원들만 베트남에 다녀오도록 했다. 현지의 모습을 보고 더 큰 울림을 얻어 나눔의 인생을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는 정말 작은 걸 주잖아요. 조그만 우물을 파주고 허름한 학교 건물을 지어주죠. 건물은 있으나 책걸상이 없어 바닥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도 너무 많아요. 그런데도 그걸 받은 현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해해요. 온 마을이 즐거워하고 우리가 가면 수백 명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환영해줘요. 현지에 다녀오면 더 많이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정 장로는 출석하는 반디제자교회(박달수 목사) 청년들에게 ‘밥 잘 사주는 장로님’으로 통한다. 오래 나눔을 하다 보니 더불어 나누며 사는 삶이 자연스러워졌다. 언제까지, 얼마를 후원하겠다는 목표도 없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회사 이름으로 유치원과 학교 등 교육 사업부터 식수사업까지 한 마을의 자립을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정 장로는 나눔을 통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크다고 했다. “후원하는 마을에 함께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해요. 우리가 주러 온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걸 받아간다고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사실은 하나님께 엄청난 선물을 받고 살아간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받은 선물을 어려운 이웃과 나눌 때 인생에서 훨씬 더 큰 선물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양산=글·사진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