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로 급선회한 배경에는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한 정치적 승부수가 깔려 있다. 안 대표가 차기 대권 도전 계획을 미루고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 경우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한껏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안 대표 자신이 주장해온 야권 재편의 불씨를 살리는 동시에 차기 대선의 전초전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포석이다.
안 대표는 이달 초만 해도 “출마 의사가 없다”고 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차기 대선 패배’라는 주장을 들고 나와 출사표를 던졌다. 안 대표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은 하나마나할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많은 원로들의 충정 어린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자해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말씀에 참으로 송구스러웠다”고 했다. 과거 안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직을 박원순 전 시장에게 양보함으로써 이른바 ‘박원순 시정 10년’의 문을 연 데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안 대표는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해야 하고 야권 단일 후보로 맞서 싸워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동안 안 대표는 야권 혁신 플랫폼을 제안하며 국민의힘에 연대 손짓을 보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번에 안 대표가 스스로 반문재인 야권 연대의 깃발을 들고 출마함으로써 야권의 맹주로 거듭나는 시나리오를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뒤따른다.
게다가 3석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을 이끄는 안 대표로선 2022년 3월 차기 대선까지 존재감을 끌어올리기에도 한계가 있다. 안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안 대표의 출마가 야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안 대표는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한 질문에 “열린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서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민의힘 후보들과의 통합 경선 방식에 대해선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공정 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위원장인 박성중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안 대표가 ‘서울시장부터 찾아오는 역할을 해야겠다’면서 야권 단일 후보로 선거를 치러야 이길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 대표의 뜻대로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에선 그의 출마를 환영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당을 이끄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그의 정치적 가능성을 평가절하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의 출마선언 이후 비대위 회의에서 “안 대표는 후보 중 한 명”이라며 “이제 서울시장 선거가 본격화되는데, 우리는 우리의 것을 잘하면 된다. 최대한 안 대표에 반응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 대표의 ‘공정 경쟁’ 언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안 대표를 향해 “자기중심적 사고를 과감히 버리고 야권 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겸허한 자세와 희생정신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한 ‘거물급’ 주자들의 출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민주당은 안 대표의 출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민주당 재보선 선거기획단 관계자는 “안 대표가 단일화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어렵고, 인물도 이젠 신선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민주당 서울 재보선기획단장은 “(안 대표는) 선거마다 출마하는 정치인”이라며 “다음 대선에도 또 나올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김경택 이가현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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