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상태에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며 사과했다. “자리에 연연하며 야합했고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지혜가 없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 문제를 공식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4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속 상태에 있는 것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간절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당시 집권 여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A4 용지 3장 분량의 사과문을 준비해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표정이 어두웠고 중간중간 목소리가 잠겼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비대위원들이 곁에 서서 사과 취지에 공감하는 뜻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일인 지난 9일 사과하려 했지만 필리버스터 진행 등 국회 일정을 고려해 이날로 미뤘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며 “특정한 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 승계 과정에 편의를 봐준 혐의 등이 있다”고 되짚었다. “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하며 공구수성(恐懼修省·몹시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함) 자세로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의 마음가짐이 부족했다”며 당의 모습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과거의 잘못을 완전히 매듭을 짓고,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준비 체제로 당을 본격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과거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계속되는 실정에도 사과하지 않는 여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당 개조와 인적 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당협위원장 ‘물갈이’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내에선 ‘할 말은 다 했다’는 평가와 ‘왜 사과를 하느냐’는 비판적 반응이 함께 나왔다. “어느 권력도 국민이 위임하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원희룡 제주도지사), “나라의 미래를 위한 용기 있는 진심이었다”(김기현 의원) 등 긍정적 목소리가 나왔다. 70년대생 초선 의원 모임인 ‘지금부터’ 소속 의원들도 “반성과 성찰은 새로운 시작의 첫 단추”라며 전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반면 친이(친이명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김 위원장의 사과는 개인적 정치 욕망을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 전 대통령 재임 중 어떠한 정경유착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실컷 두들겨맞고 맞은 놈이 팬 놈에게 사과한다. 이런 배알도 없는 야당은 처음 본다”고 쏘아붙였다.
청와대는 따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위원장이 당 전체를 그런 방향에서 잘 이끌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황당해 할 일”(정청래 의원), “원내대표 시절 모셨던 우리 당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돼 사과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우상호 의원) 등의 반응도 뒤를 이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