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민주주의 없이 검찰개혁 없다

입력 2020-12-14 04:02

내 말이 아니다. 87년생 장혜영의 말이다. 야당 비토권을 고물상에 넘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 그녀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태극기를 건 양심을 지키겠다는 약속. 부끄러웠다. 똘똘 뭉쳐 찬성표 던진 시댁 식구들을 보니 아뜩해진다. 친정엄마로 빙의할 시간. ‘사부인, 제 딸 소신도 지켜주세요. 사부인 양심만 소중한가요? 제 딸 양심도 소중해요. 그 집도 민주주의 지키고 싶죠. 저희도 민주주의 지키고 싶어요.’

난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칠흑 속에서 환한 빛을 밝힌 장 의원을 기억하겠습니다. 역사가 기억할 겁니다.’ ‘82년생 김지영’이 준 감동, 이어 87년생 장혜영이 전한 울림. 이렇게 깊은 진보도 있었구나! 불공정을 폭로하는 사명 앞에 문학과 정치가 다를 리 없다. X세대인 내가 이렇게 호들갑인데, Y세대와 Z세대는 오죽하랴. 공정과 정의를 떠받들고 김지영의 빙의에 공감하는 그들.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검찰 개혁의 엄중함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심에 비추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입법 독재주의. 이것도 내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깊게 성찰해온 국내외 석학들의 말이다. 법치로 위장해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는 것,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민주주의 정신을 혼미케 하는 것이다. 입법 독재 실행자들에게 공통적 세계관이 있다. 피해자 신념이다. 난 민주투사 넌 독재자, 난 민주 넌 반민주. 정치 DNA의 시계가 1987년에 맞춰져 있는 위인들의 공통점이다. 민주투사 코스프레다. 여당 법사위원장의 한마디.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 와서 독재로 몰아가나!’ 아뿔싸, 10년 넘게 집권하고도 여전히 희생자 코스프레다. 완벽한 연기일까, 받아줘선 안 될 어리광일까.

이쯤 되면 증오와 대립의 정치는 일상이 된다. 권력의 행사는 거칠어지고, 이내 폭력과 남용으로 변한다. 이 와중에 탄생할 권력기구의 운명은? 수사권과 기소권 두 대의 굴착기가 인권의 토양을 후벼팔 거다. 야당 비토권이란 족쇄를 풀어준 살아 있는 권력에 순종하고, 반대파에겐 힘을 과시할 게 분명할 터. 이런 자명한 결과 앞에 어떻게 공수처를 권력기관 개혁과 등치시킬 수 있나. 순진한 건가, 무도한 건가. 정당한 비판을 ‘멍청한 질문’으로 둔갑시키는 뻔뻔함은 대체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나.

십분 양보해도 절차는 지킬 줄 알았다. 공정성은 무사하겠지 싶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약속하지 않았나. 검찰총장에 대한 초유의 직무정지와 일련의 징계 절차는 민주주의를 더 깊은 심연에서 흔들었다. 그 뿌리는 감찰 보고서 작성의 부당함에 있다. ‘판사 문건’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작성자의 의견이 무시되고, 감찰관 보고도 생략됐다. 담당관의 업무 처리가 이토록 허술하기 짝이 없으니 법원과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위법·부당 판정은 당연한 귀결.

징계위원회 구성에선 한술 더 떴다. 사건 당사자인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징계위원 전원을 위촉했고,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사법 원칙은 즉각 폐기처분됐다. 총장을 대놓고 비판해온 인물이 위원장을 맡고, 여당 공천 심사자가 위원으로 옹립되면서 공정성은 이미 그로기 상태가 됐다. 법무부 감찰국장은 자의적으로 회피 시점을 택해 절차를 조롱했다. 총장 측의 기피신청쯤은 간단히 제압했다. 재판관이 다시 증인이 돼 징계위를 뒤흔들 복안도 마련했다. 껍데기만 남은 절차와 누더기가 된 공정성. 어쩐지 입법 독재와 호흡이 척척 맞는다. 대통령께 묻는다. 과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지요.

징계위가 중징계를 강행한다면 이 시점은 정확히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로 탈바꿈하는 순간으로 불려야 한다. 그때가 닥친다면 서글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권위주의가 귀환했다고. 독재자로부터가 아니라 이번엔 민주투사들로부터. 검찰 개혁의 명분과 정당성은 이미 먼 산으로 향하고 있다. 누구라도 총장 징계 절차와 공수처 설치의 정당성에 의혹을 제기할 거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은 분명히 깨닫는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누구인지를. 동시에 궁금해한다. 잡아먹힐 첫 번째 양은 누굴지. 둘째 그리고 셋째는 누가 될지. 호기심의 끝은 아마 양치기일거다. 누가 양치기일까. 언제 나타날까. 법원이건, 촛불이건, 영웅이건 누구든 좋다. 정의의 보검을 꺼내 시원하게 휘둘러만 준다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