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가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노동 현장은 골고루 개선되지 못했다. 매년 20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2년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작업 중 사고로 참혹하게 숨진 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일명 ‘김용균법’)돼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사망 사고는 줄지 않았다. 이에 정치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위한 여야 3당 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정의당이 지난 6월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김용균법에도 사업주 처벌 규정이 있지만 처벌 수위가 낮고 실제로 처벌받는 경우도 드물어서 이같이 강력한 법안이 나온 것이다. 재계는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과잉 입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물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끊임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사고를 예방하고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정당도 호응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0일 정의당과 함께 정책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말대로 산업 안전은 정파 간 대립할 문제가 아니므로 여야가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냐,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냐를 놓고 아직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처벌’이란 단어를 넣어 새 법을 만드는 것이 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이낙연 대표가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음에도 이런 기류 때문에 지금까지 추진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당에도 자체 법안이 나와 있다. 큰 틀은 정의당 안과 동일하되 벌금 수위가 낮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법 적용을 4년간 유예한다는 규정이 추가됐다. 각론에서의 차이일 뿐이니 야당과 의견을 조율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민주당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향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길 바란다.
[사설] 전태일 50주기… 여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입력 2020-11-1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