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만큼 결과가 가치판단 기준의 대부분인 영역도 드물다. 감독이 어떤 전술을 짰는지, 선수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경기 결과에 따라 비난과 찬사가 갈린다. K리그 아이콘 이동국은 월드컵에서의 ‘물회오리슛’ 한 장면으로 억울하리만치 비하를 당했지만, 툭하면 술냄새를 풍기며 코트에 나타났던 농구천재 허재는 그럼에도 항상 득점을 쓸어담아 찬사를 받았다. 좋은 결과를 내놓지 못했을 때는 자칫 걸어온 모든 길이 매도당하지만, 상식 밖의 기행을 하더라도 결과가 좋다면 대개 위대한 선수나 감독으로 남는다.
프로축구 시민구단 광주 FC는 올해 힘겨운 ‘코로나 시즌’ 와중에도 역사를 새로 썼다. 1부 승격 첫해에 상위 6개 팀에만 허락되는 파이널A 안에 극적으로 들었다. 1부 시민구단 중에서도 예산이 적은 편인 광주가 이 정도 성적을 낸 건 꽤 큰 사건이다. 박진섭 감독의 팔색조 전술과 선수단의 끈끈한 조직력, 성인대표팀까지 호출된 새로운 스타 엄원상까지. 광주의 팬이라면 꿈만 같았을 ‘결과’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는 시즌 내내 흘린 땀의 보상이었다.
광주 구단의 허위 수당 의혹이 보도된 건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 8월이었다. 직원들이 시간외수당을 부풀려 받아 왔다는 요지였다. 확인을 하러 연락한 당시 의혹 당사자들은 일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기록이 허위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광주시 담당자는 근무기록이 정확한지 확인이 어렵기에 조사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시는 3개월이 더 지나 시즌이 끝나서도 감사를 진행 중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별개 법인인 구단이 내부 조치를 않는 이상 이번 일은 광주시의 지원금만 줄어든 채 유야무야될 수 있다.
야구의 인기 때문인지 몰라도 광주의 축구팬들은 다른 팀에 비해 수가 적다. 이 얼마 안 되는 축구팬들은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있던 지난달 말 경기장에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구단으로부터 철거를 요구받았다. 현수막에는 ‘소통을 잊은 구단은 미래가 없다’ ‘구단은 묵묵부답, 팬은 속이 답답’이라는 문장이 적혔다. 수개월째 무소식인 감사 결과만 기다릴 게 아니라 구단 대 팬의 입장에서 직접 속시원히 해명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현장에 있던 팬이 건네준 녹취파일에는 구단 직원이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을 운운하며 현수막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음성이 담겼다. 구단의 철거 시도는 결국 연맹 경기감독관이 철거할 만한 현수막이 아니라고 직접 답하고 나서야 무위로 돌아갔다.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지난 8월에도 구단은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을 규정을 들먹이며 억지로 철거시켰다. 사태가 시끄러워지는 걸 막는 데 급급할 뿐 팬들에게 어찌된 일인지 직접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프로스포츠를 전근대 사회의 ‘놀이’와 구분짓는 건 관전자, 즉 팬의 존재다. 20세기 들어 돈을 지불하고 경기를 보는 관중이 모인 덕에 임금을 받고 뛰는 프로선수들이 생겼고, 이를 관리하는 구단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그토록 중요한 결과 이외에 프로스포츠에서 가치 판단의 다른 기준을 든다면 가장 먼저 꼽아야 하는 건 바로 팬들이다. 그 수가 많지 않다 해서, 혹은 당장 입장이 곤란해진다 해서 들끓는 요구를 없는 셈 취급하는 건 프로구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일과 진배없다.
광주의 감독과 선수단은 올 시즌 최고의 결과물을 남겼다. 어려운 여건에서 이들이 일군 성적은 족히 기적이라 부를 만했다. 그러나 좋은 결과로 덮어질 수 없는 것도 있다. 광주시의 하부조직이나 공공기관도 아닌 프로구단이 팬들을 향한 직접 설명이나 선제 조치 없이 감사 결과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렇다. 명확지도 않은 규정을 들며 팬들의 입을 막으려 한 행동과 이를 공식 사과 없이 넘어가는 모습도 프로답지는 않다. 그저 공만 잘 찼다고 좋았던 시즌이라 기억될 수는 없는 일이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