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서는 ‘여자’선수가 아니라 ‘선수’니까요. 다른 요소에 가려지지 않게, 선수의 기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감독이 할 일이에요.”
경주 한수원의 첫 여성감독 송주희(43) 감독은 올해 돋보였다. 초보감독인 그의 지휘 아래 경주는 지난 시즌까지 리그 7연패에 빛나는 디펜딩챔피언 인천 현대제철을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15일 마지막 라운드 뒤 양팀 사이 승점차는 겨우 1점. 인천이 리그를 지배한 8년 동안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다. 송 감독은 철저하게 분업화한 훈련방식과 ‘큰언니’같은 따뜻한 리더십으로 팀을 움직였다.
송 감독은 정규리그 일정이 끝난 다음날 자택이 있는 경기도 양주로 홀로 차를 몰아 돌아왔다. 시즌 내내 주말마다 친정과 시댁에 맡긴 두 아이를 보러 달린 길이다. 정규리그가 종료됐지만 그는 여전히 쉴 틈이라고는 없었다. 19일부터는 다시 팀으로 돌아와 3주 뒤 있을 수원도시공사와의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 여기서 이긴다면 11월 이어질 챔피언결정전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올 시즌은 여자축구 역사에 기념비적 해였다. WK리그 8개 구단에 여성 감독이 4명. 타 종목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최근 수년 사이 남성 지도자들이 폭행이나 성폭력 등 사례가 빈번했던 게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송 감독 역시 9년간 코치 생활을 한 화천 KSPO를 떠나 첫 지휘봉을 잡았다. 2003년 사상 첫 여자월드컵에 진출했던 송 감독 등 1세대는 이제 지도자로서 새 시대를 맞았다.
송 감독 부임 전인 지난 시즌 경주는 정규리그 2위였지만 디펜딩챔피언 인천의 아성을 위협하기에는 모자랐다. 인천과의 승점차는 27점. 경쟁자라고 보기도 민망한 점수였다. 그러나 올 시즌 경주는 보은 상무에 당한 1패를 제외하면 패배가 없다. 특히 인천에는 3번의 맞대결 중 2승 1무로 압도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12연승이라는 대기록도 썼다. 인천의 유일한 맞수로 불렸으나 지금은 해체된 이천 대교보다 강력한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는 여성 지도자의 강점은 ‘선수다운’ 모습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다움, 즉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감독과 선수가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송 감독은 “여자축구가 발전한 일본에 가보니 선수나 지도자 중 그 누구도 훈련 중 몸을 부딪히며 태클하길 꺼리지 않았다”며 “국내에서는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또 같은 맥락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영향을 받지만, 여성 지도자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신뢰감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점도 송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 감독의 장점이다. 그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저를 믿고 따르는, 둘 만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훈련장 바깥에서 생활할 때는 모르는 척하고 져주고 해야할 때가 있다. 그렇게 생기는 여자들끼리 특유의 연대감이라는 게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성 감독으로서 고민도 크다. 그는 “워낙에 여자축구 인프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 다시 여성 지도자들이 갈려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며 “세대가 바뀌어 다시 남성 지도자들이 더 많아진다 해도, 여성 지도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올 만큼 저희가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