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축구 女감독 시대 주도… “여자들끼리 연대감 이끌어 내”

입력 2020-10-19 04:07
송주희 감독의 지휘를 받은 경주 한수원 선수들이 지난달 28일 홈구장인 경주 황성제3구장에서 열린 2020 WK리그 18라운드 서울시청과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경기장에서는 ‘여자’선수가 아니라 ‘선수’니까요. 다른 요소에 가려지지 않게, 선수의 기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감독이 할 일이에요.”

경주 한수원의 첫 여성감독 송주희(43) 감독은 올해 돋보였다. 초보감독인 그의 지휘 아래 경주는 지난 시즌까지 리그 7연패에 빛나는 디펜딩챔피언 인천 현대제철을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15일 마지막 라운드 뒤 양팀 사이 승점차는 겨우 1점. 인천이 리그를 지배한 8년 동안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다. 송 감독은 철저하게 분업화한 훈련방식과 ‘큰언니’같은 따뜻한 리더십으로 팀을 움직였다.

송 감독은 정규리그 일정이 끝난 다음날 자택이 있는 경기도 양주로 홀로 차를 몰아 돌아왔다. 시즌 내내 주말마다 친정과 시댁에 맡긴 두 아이를 보러 달린 길이다. 정규리그가 종료됐지만 그는 여전히 쉴 틈이라고는 없었다. 19일부터는 다시 팀으로 돌아와 3주 뒤 있을 수원도시공사와의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 여기서 이긴다면 11월 이어질 챔피언결정전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올 시즌은 여자축구 역사에 기념비적 해였다. WK리그 8개 구단에 여성 감독이 4명. 타 종목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최근 수년 사이 남성 지도자들이 폭행이나 성폭력 등 사례가 빈번했던 게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송 감독 역시 9년간 코치 생활을 한 화천 KSPO를 떠나 첫 지휘봉을 잡았다. 2003년 사상 첫 여자월드컵에 진출했던 송 감독 등 1세대는 이제 지도자로서 새 시대를 맞았다.

송 감독 부임 전인 지난 시즌 경주는 정규리그 2위였지만 디펜딩챔피언 인천의 아성을 위협하기에는 모자랐다. 인천과의 승점차는 27점. 경쟁자라고 보기도 민망한 점수였다. 그러나 올 시즌 경주는 보은 상무에 당한 1패를 제외하면 패배가 없다. 특히 인천에는 3번의 맞대결 중 2승 1무로 압도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12연승이라는 대기록도 썼다. 인천의 유일한 맞수로 불렸으나 지금은 해체된 이천 대교보다 강력한 모습이다.

지난달 28일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지도한 송주희 감독의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가 생각하는 여성 지도자의 강점은 ‘선수다운’ 모습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다움, 즉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감독과 선수가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송 감독은 “여자축구가 발전한 일본에 가보니 선수나 지도자 중 그 누구도 훈련 중 몸을 부딪히며 태클하길 꺼리지 않았다”며 “국내에서는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또 같은 맥락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영향을 받지만, 여성 지도자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신뢰감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점도 송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 감독의 장점이다. 그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저를 믿고 따르는, 둘 만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훈련장 바깥에서 생활할 때는 모르는 척하고 져주고 해야할 때가 있다. 그렇게 생기는 여자들끼리 특유의 연대감이라는 게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성 감독으로서 고민도 크다. 그는 “워낙에 여자축구 인프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 다시 여성 지도자들이 갈려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며 “세대가 바뀌어 다시 남성 지도자들이 더 많아진다 해도, 여성 지도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올 만큼 저희가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