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39일 앞둔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군수산업 밀집 도시 뉴포트뉴스에 위치한 뉴포트뉴스·윌리엄스버그 국제공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오후 8시55분 공항에 착륙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동행했다.
공항에 마련된 트럼프 유세장엔 이날 오후 6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6시 이전에 이미 많은 사람이 모였고 긴 줄이 형성됐다. 공항 주차장은 일찌감치 가득 찼다. 인근 노퍽에서 왔다는 제임스 매츠는 “트럼프 대통령을 앞에서 보기 위해 오후 1시에 왔다”고 말했다.
활주로 유세장에 4000여명 몰려
코로나19 이후 공항 활주로 유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이 됐다. 활주로는 실내보다 코로나19 전염 가능성이 낮은 데다 차량 이동으로 인한 시간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지역 언론 ‘버지니안 파일럿’은 이날 트럼프 유세에 4000여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버지니아주는 코로나19로 인해 250명 이상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캠프는 “미국인들은 평화적으로 모여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권리가 있다”며 유세를 강행했다.
유세 현장에서 20명이 넘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부정선거만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확대 실시될 우편투표가 부정·사기 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거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대선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할 경우 지지자들도 그를 따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미국은 대선 후 대혼돈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내게 투표해야 미국 구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오후 9시를 살짝 넘긴 시점에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투표를 해야만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고, (무기 소유의 권리를 보장한) 수정 헌법 2조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기 소유에 찬성하는 보수층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은 민주당을 급진좌파에 넘겨준 약한 후보”라고 비판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며 “4년 더”를 계속 외쳤다.
민주당 소속 랠프 노덤 버지니아주지사도 공격의 대상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은 내게 ‘버지니아주는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미친 주지사가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주마다 여러분의 총을 뺏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노덤 주지사가 총기규제 찬성론자라는 점을 거론하며 공격을 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지니아주의 코로나19 규제도 문제 삼았다. 그는 “버지니아주는 교회도 못 가게 하고, 식당도 못 가게 하고, 친구 집도 못 가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역언론인 ‘리치먼드타임스 디스패치’는 그런 규제는 없다고 꼬집었다.
“바이든 부정선거 시도하면 싸울 것”
유세장에는 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건설노동자라는 리처드 퓰러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와 평범한 서민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며 “바이든은 기득권 정치인이지만 트럼프는 애국자”라고 평가했다.
40대 백인 남성 제레미 케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그 보답으로 그를 지지한다”면서 “그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고 말했다.
중년 여성 제시카 머레이는 “코로나19 대응, 경제, 교육 등 모든 이슈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잘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없었으면 미국에선 수백만명이 코로나19로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에 장악된 미국 언론의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지자들은 바이든 후보를 “거짓말쟁이” “멍청이(idiot)”라고 비난했다. 한 지지자는 “바이든은 우편투표를 악용해 부정선거를 시도할 것”이라며 “바이든이 부정선거를 할 경우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토머스라는 이름의 20대 백인 남성은 “바이든은 선거를 훔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그럴 경우 미국은 대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방위비 더 내라” 요구하기도
한 트럼프 지지자는 한국 기자라고 소개하자 “한국은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기자가 “한국은 이미 방위비에 많은 돈을 내고 있다”고 반박하자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충분한 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당신은 미국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계속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반한(反韓)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 아닌가 우려가 되는 대목이었다.
유세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 중 60∼70%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입구에 마련된 임시텐트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체온 측정을 하고 세정제를 나눠주고 있었다. 마스크를 안 쓴 참석자들에겐 일회용 마스크가 제공됐다.
유세 현장 주변에선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흑인 인권은 중요하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시위대와 트럼프 지지자들은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충돌을 막기 위해 애썼다.
뉴포트뉴스=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