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들 ‘검은돈’ 거래 연루… 美 재무부 자료 파문

입력 2020-09-22 04:02
영국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HSBC,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SC) 등 글로벌 은행을 통한 ‘검은돈’ 거래 정황들이 대거 폭로됐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자료로 거래 대상은 170여개국에 걸쳐 있으며, 거래 규모는 총 2조 달러(약 2316조원)에 달한다. 이들 은행은 거래 배후에 테러조직, 마약밀매범, 부패한 외국 관료 등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 온라인매체 버즈피드는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가 취합한 전 세계의 수상한 금융거래 1만8000여건이 담긴 파일 2100여건을 입수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글로벌 은행들은 자사를 이용한 수상한 거래가 포착될 경우 60일 이내 FinCEN에 ‘의심활동보고서(SAR)’를 제출해야 하는데, 최근 이 보고서가 버즈피드를 통해 대량 유출된 것이다.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를 통해 각국 지도자와 정치인, 유명 인사들의 조세회피 의혹을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세계 4000명 이상의 언론인이 이번 자료를 분석하는 데 참여했다.

ICIJ에 따르면 FinCEN 파일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은행은 HSBC, JP모건체이스,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 뉴욕멜론은행, 바클레이즈 등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던 2008~2017년 뉴욕의 주요 은행들을 통해 돈세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까지 JP모건과 뉴욕멜론은행 등을 통해 승인된 거래 규모는 1억7500만 달러(약 2029억원)에 육박한다.

대량살상무기(WMD) 제조 관련 제재 대상인 북한 기업과 금융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이미 미 법무부에 기소돼 있는 중국 단둥훙샹실업발전과 마샤오훙 대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 대표와 그의 회사는 중국과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국 등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위장회사를 활용해 최종 종착지인 북한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JP모건체이스, 뉴욕멜론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으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를 총괄하는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는 러시아 정부 및 정보기관,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부와의 유착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인물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단골처럼 등장한다. JP모건체이스는 매너포트와 키프로스의 유령회사들 사이 금융거래가 총 3억 달러 이상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이 가운데는 2014년 쫓겨난 우크라이나 친러계 성향의 전 대통령을 도왔던 정치컨설팅 회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외에도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은 미 재무부 제재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비밀계좌를 활용해 수백만 달러를 돈세탁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탠다드차타드는 탈레반과 유착관계에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기업의 자금 송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파일에 대해 해당 은행들은 “다 끝난 거래”라고 해명하거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