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은 ‘백혈병 인식의 달’이다. 매년 곳곳에서 환자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이 때 즈음이면, 필자도 기다려지는 연락이 있다. 바로 5년 전 만삭인 아내와 진료실을 찾은 김준현(37세)씨 소식이다. 결혼 4년 만에 소중한 아이를 얻은 준현씨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라는 희귀 혈액암을 진단받았다. 준현씨의 두 번째 항암치료가 실패로 끝났을 때 기적과 같이 블린사이토라는 신약의 건강보험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관해(혈액 내 암세포가 5% 미만인 상태)가 왔고, 조혈모이식수술도 성공적이었다. 얼마 전 딸 예지양의 다섯 번째 생일을 함께 보낸 준현씨는 블린사이토를 만난 것이 삶의 모든 행운을 쓴 것 같다고 말한다.
블린사이토(블리나투모맙)는 연령이나 염색체 변이, 조혈모세포이식 가능 여부에 관계없이 이전 치료에 반응이 없었거나 재발한 모든 환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제다. 2015년 허가 후, 국내 급성 백혈병의 평균 생존기간을 연장시켰다고 할 만큼 치료에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효과는 국내 의료진들이 한국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블린사이토가 국내의 성인 필라델피아 음성 환자에서 나타낸 관해율은 70%로, 다국가 임상시험 결과(44%)에 비해 훨씬 높았다.
또 블린사이토로 치료한 국내 환자의 62.5%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다. 조혈모세포이식은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 완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블린사이토는 이식수술에 치명적인 이상반응인 정맥폐쇄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블린사이토의 바이트(BiTE)라는 작용기전 때문이다. 블린사이토는 백혈병 세포와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동시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면역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를 공격한다. 이 점이 블린사이토가 다른 치료제와 다르게 특히 이식을 계획한 환자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치료제로 평가되는 이유다.
준현씨의 말 대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의지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신약개발에 매진한 연구자들과 극소수 환자들이 빠르게 약을 쓸 수 있도록 힘써온 보건당국의 협력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백혈병 인식의 달’을 맞아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앞으로도 이러한 각계의 협력 속에서 블린사이토가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완치를 위한 희망의 이정표가 되길 소망한다.
도영록(대한혈액학회 림프모구백혈병연구회 위원장)
백혈병 환자의 빛과 희망 ‘블린사이토’
입력 2020-09-15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