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미국 대선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입력 2020-09-09 04:03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에서 백인은 전체 유권자의 66.7%로 추산된다. 정확히 3분의 2다. 흑인 유권자 비율은 12.5%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가 된다면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정치인의 속성을 한 줌의 죄책감도 없이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집단은 백인 극우세력이다. 미국 조사기관 ‘모어 인 커먼(More in Common)’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6%다. 그러나 숫자가 적다고 절대 얕잡아 볼 세력이 아니다. 정치적 폭발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적 이유로 총격·차량 등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른다. 또 페이스북 등을 활용해 음모론을 퍼 나른다. 보수 정치인들도 눈 밖에 났다가는 이들의 먹잇감이 된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백인 극우세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종 통합을 호소하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극우세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끌려다닌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지난달 25일엔 백인 청소년이 흑인 사망 항의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며칠 뒤에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더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청소년을 두둔하면서 “그는 그저 도망가려 했다”면서 “(시위대의 공격으로 그는)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이 이어지면서 흑인들의 일부 시위가 방화나 약탈 등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흑인 시위대를 겨냥해 총을 쏜 청소년을 감싸는 것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극우세력과 지나치게 가까운 모습을 보이자 역풍 조짐도 보인다. 온건한 백인층이 트럼프 대통령을 떠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영라디오 NPR 등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와 2016년 대선 통계를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WP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백인층에서 66%의 지지를 받았으나 올해는 55%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졸 이상 백인층에서 ‘48%대 45%’로 신승을 거뒀으나 올해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40%대 57%’로 크게 밀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WP는 백인 전체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는 48% 지지율로 동률이라고 전했다. 이 분석기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 흑인들은 바이든 후보에게 몰표를 던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조사일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 대선의 승패를 예단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선의 투표함이 열린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전체 득표율을 따져 보는 것은 승패를 떠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태극기 세력’의 액면가가 드러났다. 친박을 자처했던 우리공화당(0.74%)과 친박신당(0.51%)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득표율 1%도 채우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중도로 방향을 트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상황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WP 분석대로 온건한 백인층이 ‘백인 외사랑’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떠난다면 더불어민주당도 극성팬들과의 거리두기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소수의 거센 목소리가 지배할 경우 다수의 온건한 팬들은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