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사원 감사 결과까지 여권 입맛에 맞춰야 하나

입력 2020-07-29 04:02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여권의 공격이 도를 넘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장을 거친 최 감사원장을 발탁한 것은 이번 정부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2017년 12월 여권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합리적이고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이라고 했고, 청와대는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라며 감사원의 독립성을 언급했다. 아들 두 명을 입양했고, 고교 시절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2년 동안이나 업고 등하교시켰던 미담을 적극 홍보한 것도 청와대였다.

하지만 최 원장이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시작하면서 여권의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과거 발언까지 인용하면서 노골적인 최 원장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감사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등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감사원장이 스스로 감사 과정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후 친문 네티즌들은 최 원장을 일제히 공격하고 있다. 최 원장을 “원전 마피아”로 칭하는 글도 있다. 여권의 갑작스러운 공격은 내달 초로 예상되는 월성원전 1호기 감사 결과 발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해 감사원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결론을 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대로라면 문재인정부가 국정 핵심 과제로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헌법에 명시된 최고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 기관인 감사원은 직무 수행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감사원법 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여권 인사들의 감사원장에 대한 공격은 감사원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직무 감사 결과에 대한 ‘겁박’의 측면까지 있다. 검찰총장 지휘권 무력화 시도에 이어 견제와 균형을 원칙으로 설계된 국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심각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