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양시 만경대구역 인근 원로리 일대에서 핵 시설을 운영해온 정황이 위성 사진을 통해 포착됐다. 특히 이 지역 핵 시설은 기존에 신고되지 않은 것이어서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도 핵 개발을 지속해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시간) CNN방송은 민간 위성 업체인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원로리 일대 위성 사진을 공개하며 이곳에 핵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시설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을 분석한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촬영된 지역을 오랜 시간 관찰했고 핵 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공장 가동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협상을 진행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핵 개발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루이스 소장은 이어 “위성 사진에는 북한 핵 시설의 전형적인 특징이 전부 나타난다”며 “트럭과 컨테이너 적재 차량으로 보이는 다량의 운송 설비와 감시 시설, 고층 주거지, 지도부 방문 기념비 등은 일반적인 시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 시설 지역에 고층 주거지를 지어 과학자를 우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지도부 방문 후에 기념비가 세워져도 이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CNN에 따르면 이 시설은 2015년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 연구원들에 의해 발견됐지만 당시 루이스 소장과 동료들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시설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이스 소장은 “안킷 판다 미국과학자연맹(FAS) 선임연구원이 출판 예정인 그의 저서에서 원로리 시설의 이름과 기능을 설명했다”며 “공익을 위해 해당 내용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CNN에 전했다.
판다 연구원의 책 ‘김정은과 폭탄’에는 원로리 시설이 핵탄두 개발과 관련 있으며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 무기를 분산 배치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은 원로리 시설과 북한 핵 프로그램의 연관성에 대해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한국 국방부는 “민간 연구단체의 연구 결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한·미 정보 당국은 긴밀한 공조 하에 관련 시설 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그동안 미확인됐던 새로운 핵 시설이 공개됨에 따라 “북한의 핵 위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이 또다시 설득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