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겨냥한 화살… 보안요원 “눈치 보여 구내식당도 못 가”

입력 2020-06-29 00:05 수정 2020-06-29 09:51

“보안검색원들은 요새 다른 직원들 눈치가 보여 구내식당도 못 갑니다. 십여 년간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서 낮은 처우, 고용 불안정을 겪어야 했던 우리 입장은 누가 대변해줄까요.” 공민천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서비스노조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발표 이후 예상치 못한 거센 후폭풍에 보안검색원들이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들은 되레 고용 불안정에 빠졌지만 ‘정규직화 반대’ 여론을 의식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측의 섬세하지 못한 발표 탓에 비난의 화살이 ‘을’에게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8일 인천공항 보안검색노조에 따르면 보안검색원·소방대 노조는 지난주 ‘일방적 정규직 전환 규탄’ 기자회견을 연 후 이주 총투쟁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무기한 보류했다.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국민 청원글이 2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는 등 여론이 너무 안 좋다”며 “회사 측에 맞대응하는 모습이 이런 분위기를 악화시킬까 봐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사측이 탈락자 구제방안 없이 일방적으로 직접고용을 밝힌 데 반발하고 있다. 직접고용 대상자 2143명 중 3급 이상의 관리직과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 800여명은 NCS 등 공개채용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앞서 노조와 회사는 ‘보안검색원을 우선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관련 법 개정 이후 직고용한다’는 데 합의했었다. 노조는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사이에 탈락자 구제방안을 사측과 협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22일 인천공항이 돌연 ‘법 개정이 어려울 것 같으니 청원경찰 신분으로 내년 직고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관리직과 2017년 이후 입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공 위원장은 “검색원을 알바라고 부르는 등 반대 여론 때문에 직원들이 마음고생이 심하다”며 “연봉 5000만원을 받는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사라지나 했더니 이젠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정치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인수 보안검색운영노조 위원장은 “관리직은 10년 넘게 비정규직 차별을 버티며 일해 왔는데도 경쟁채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일부 직원은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 방문 이전에 채용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도 부서 배정이 나중에 됐다는 이유로 시험을 봐야 하는 등 불공평한 요소가 많다”고 토로했다.

장기호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치안센터 앞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일부 소방대 관리자들은 이번 공채가 부당하다며 지난 15일 인천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전날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방직 경쟁채용 필기시험엔 응시생 618명이 몰렸다. 이중 현직은 59명으로 관리직이 19명,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가 40명이다. 노조는 다음 달 3일 발표되는 필기 합격자 70명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기존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 비정규직 채용 문제 등에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데, 공사 경영진들이 정책 기한(6월 말) 만료를 앞두고 성급하게 발표했다”며 “고용 불안정이 오히려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경쟁채용 절차를 필기시험이 아닌 보안검색 직무에 특화된 평가 방식으로 수정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